호는 일민(一珉). 1944년 5월 17일 경북 예천군 개포면 갈마리에서 태어났다. 예천에서 용궁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와 덕수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때 몸이 허약하여 자주 양호실에 누워 지내면서 많은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1964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시인 서정주, 비평가 조연현 같은 스승들로부터 시창작 재능을 인정받았다. 1970년대 휘문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83년에 동국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84년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와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1991년 「정지용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시』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53세인 1996년 5월 19일 교통사고로 숨졌다.
『현대문학』에 「나의 습작」(1965), 「내 손금은」(1966), 「눈의 서곡」(1967)을 발표하여 등단했다. 대학 졸업 후 「나의 농부」(1968), 「생활일기」(1969) 등을 발표하였다. 예리한 감각의 표출, 선명한 이미지의 추구, 독창적인 상징법 등 참신한 언어와 시각적 상상력을 보여준 『밤의 환상곡』(1976), 산업화 및 근대화로 인해 망가진 고향과 1970∼80년대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하루만 허락받은 시인』(1995) 등의 시집을 펴냈다. 대표작 「사랑을 위하여」, 「대한민국 갈마리」, 「천국의 바람소리」, 「폭포수」, 「가을 이미지」, 「깊은 밤」 등을 비롯하여 약 150여 편의 시를 남겼다. 정의홍의 시는 크게 시대상황, 자연, 종교적 모티프의 세 갈래로 설명되며, 사상을 감각적으로 파악하는 형이상학적 특질을 보인다. 이 외에도 「시의 형상화와 공감의 문제」(1974), 「시의 사회적 인식」(1987) 「정지용 시 연구」(1995) 등 시의 개성적 형상화 및 사회적 공감의 문제에 주목한 다수의 평론이 있다.
1996년 사후에 시집 『하루만 허락받은 시인』으로 제15회 문학평론가협회상을 받았고, 1998년에는 동국대학교 출신 문학인들에게만 수여되는 12회 동국문학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 그가 재직했던 대전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에는 「우리나라」라는 시가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