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본질 (질)

경제
개념
소련에서 고려인들이 농번기에 팀을 이루어 거주지를 떠나 농지를 임차하여 농사를 짓고 이익금을 가지고 거주지로 되돌아오는 영농방식.
내용 요약

고본질은 소련에서 고려인들이 농번기에 팀을 이루어 거주지를 떠나 농지를 임차하여 농사를 짓고 이익금을 가지고 거주지로 되돌아오는 영농방식이다. 토지를 의미하는 고본과 행동을 뜻하는 질을 합친 말이다. 거주 이전에 대한 제한 조치가 풀린 195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영농방식이다. 기본 운용 단위는 ‘브리가다’라고 불리는 40~50명에서 100명 정도의 소규모 공동체의 농업작업반이다. 고려인들은 고본질 영농 방식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어 체제가 변화하면서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키워드
정의
소련에서 고려인들이 농번기에 팀을 이루어 거주지를 떠나 농지를 임차하여 농사를 짓고 이익금을 가지고 거주지로 되돌아오는 영농방식.
연원 및 변천

고본질은 토지를 의미하는 고본과 행동을 뜻하는 질을 합친 용어이다. 곧 농번기에는 객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다가 농한기에 고향으로 돌아와 생활하였던 ‘계절농업’을 말한다. 용어의 정확한 사용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인들이 개인적인 경제 활동을 언급할 때 사용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예상하지 못한 자연 재해나 시장 상황의 변동으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경제성이 높은 고본질 농사에서 얻은 소득은 고려인들에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주된 수입원이 되었다.

이 영농 방식은 1937년에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되고, 1953년에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에 실시되었다. 곧 거주 이전에 대한 제한 조치가 풀린 1950년대 중반 이후에 주로 등장하였다. 콜호즈(kolkhoz)의 확대와 재조직으로 인해 다민족 콜호즈가 나타나고, 생산성이 악화된 콜호즈의 통합 등 경제적인 상황이 변화하면서, 고려인 콜호즈의 경제적 여건이 악화되자 점차 확대되었다. 고려인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계기로 먼 거리에 위치한 농토를 빌려 농사를 지으면서, 자신이 소속된 콜호즈의 부족한 경제적 이윤을 채워 나가는 한편 더 많은 소득을 얻었다. 이에 따라 고본질 영농 방식은 1986년에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의 개혁 조처인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가 추진된 뒤에 합법화되었다.

내용

고본질 영농 방식은 생산 주체가 매년 3월~10월에 거주지에서 다른 지역에 있는 생산 현장인 농장으로 이주하여 임시 거주공간으로 농막(農幕)을 짓고서 생산과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것이다. 다만 여러 해 동안 원래의 거주지와 영농 거주지를 규칙적으로 옮겨 가며 생활하였기 때문에, 생활을 꾸려나가는데 여러 가지의 어려움이 나타났다.

고본질 영농 방식의 기본 운용 단위는 개인적인 농업 경제 단위가 아니라 ‘브리가다(бригада, Brigada)’라고 불리는 소규모 공동체의 농업작업반이었다. 농업이 노동집약적 생산 활동의 특징을 갖기 때문에, 이전부터 집단 농장의 근간으로 기능하였던 브리가다 단위로 이동하거나 가족을 포함한 친인척 공동체 단위로 고본질을 실행하였다. 브리가다의 규모는 대체로 40~50명에서 100명 정도에 이르렀으며, 고본질 농사팀의 대표자는 조직 구성, 현장 활동, 판매망 구축 등에서 매우 큰 권한을 가졌다.

고본질 영농은 생산성과 판매 경로가 뛰어난 지역을 찾아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대표자는 토질의 변화와 비옥도, 현지인의 성향, 판매 예측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특정 지역을 선택하고서 임대차 계약을 실행하였다.

고려인들은 고본질 영농 방식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들은 먼 거리인 우크라이나(Ukraine) 남부 지역이나 카스피해 주변의 북카프카즈(Kavkaz) 등지에서도 고본질 영농을 추진하여 성공적인 활동을 보였다.

의의와 평가

고본질은 1960~1970년대에 국영농장인 솝호즈와 집단농장인 콜호즈의 생산성 하락으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시된 불법적이고 보완적인 영농 방식이었다. 특히 집단농장의 목표량 미달 부분을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 소련 말기에는 매우 유명한 영농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어 체제가 변화하면서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참고문헌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김호준, 주류성, 2013)
『까자흐스딴의 고려인』(전경수, 서울대 국사학과, 2002)
『중앙아시아 한인의 의식과 생활』(한국사회사학회, 문학과 지성사, 1996)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고본질」(백태현·이 애리아,『비교문화연구』6권 1호,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2000)
집필자
황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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