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송포 호미걸이는 칠월 칠석날 전후 경기도 고양시 일대에서 농기에 호미를 걸며 행하던 민속놀이이다. 한 해의 농사를 마감한다는 의미와 풍년을 기원하고 피로를 푸는 잔치의 의미를 지닌다. 음력 7월 7일경 농사가 잘되었다고 판단했을 때 연행한다. 이 놀이는 고양시 송포의 김매기소리와 고양 두레 12채 농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1931년에 중단되었다가 1977년에 발굴·재현되기 시작했다. 상산제·대동고사·대동놀이·유가제·뒷풀이 순서로 연행된다. 이 민속놀이는 호미를 매개로 공동체의 노동·휴식, 의례를 이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호미씻이’ · ‘공굴(共屈)’ · ‘공회(公會)’ · ‘백중놀이’ · ‘두레놀이’ · ‘머슴놀이’ · '술메기'로도 불린다. 이 놀이는 농기에 호미를 걸어둠으로써, 한 해의 농사를 마감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풍년을 기원하고 피로를 푸는 잔치의 의미를 지닌 놀이이다. 이 놀이는 고양시 송포의 김매기소리와 고양 두레 12채 가락으로 구성된 농악으로 구성되어 있고, 1998년 경기도무형문화재(현, 경기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고양시 송포(松浦)는 한강 하류의 벼농사지역으로 곡창지대가 발달한 곳으로서, 두레문화의 형태를 띠고 공동체적인 노동과 놀이가 발달해왔다. 이 지역에서는 음력 7월 7일경 두벌 또는 세벌 김매기가 끝나는 시점에 농사가 잘 되었다고 판단했을 때, 호미걸이를 연행했다.
농기는 그 마을 공동체의 두레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농기의 버릿줄(또는 벌이줄, 버렛줄이라고도 함)에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는 것은 공동체의 휴식을 상징하면서 풍년을 염원하는 마을공동체적 신앙과도 연결된다.
1931년을 끝으로 중단되었다가 1977년 김현규(金鉉圭, 1942~2004)에 의해 발굴되어 재현하기 시작하였고, 1984년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우수상을 수상한 후 1998년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양송포호미걸이보존회에서 보존 · 전승하고 있으며, 2004년 작고한 김현규의 뒤를 이어 전수조교 조경희가 활동하고 있다.
‘상산제’, ‘대동고사’, ‘대동놀이’, ‘유가제’, ‘뒷풀이’ 순서로 연행된다. 이 놀이는 농기를 앞세우고 마을의 도당산에 올라 '상산제(上山祭, 또는 山上祭)'를 거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상산제는 마을 주민대표나 두레패의 영좌가 도당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유교식 제사이다. 상산제 후, 두레패가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면, 마을의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대동고사'를 지낸다. 이 고사(告祀)는 각 가정의 소원을 빌고, 마을의 무사태평을 염원하는 것으로 덕망 있는 마을노인 중 여성이 제주(祭主)를 맡아 비손하게 된다.
'대동놀이'는 ‘기(旗)세배’ · ‘기수뽑기’ · ‘깃대재주부리기’ · ‘무등타기’ · '호미걸이소리'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기세배'는 기절받기라고도 해서 신(新) 두레패의 기가 절을 하면, 구(舊) 두레패의 기가 반절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기수뽑기'는 힘센 사람을 뽑아 필목 등을 상품으로 주게 되는데, '깃대재주부리기'에서 뽑힌 기수는 이 필목을 가지고 재주를 부리게 된다.
이 재주에는 기쓸기 · 종기놀리기 · 조사놀리기 등이 있다. '무등타기'는 멍석으로 만든 모의(模擬) 소를 등장시켜 춤을 추며 노는 것을 말한다. 이 때 나오는 두레패의 '호미걸이의 소리'는 긴소리 · 사두여 · 양산도 · 방아타령 · 놀놀이 · 떴다소리 · 자진놀놀이 · 상사디야 · 훨훨이 · 몸돌소리 등 열 가지이다.
'유가제'는 두레패와 함께 마을과 각 가정집을 돌며 풍물을 울리고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고, '뒷풀이'는 유가제가 끝난 뒤, 호미걸이에 참여한 마을사람들이 음식과 술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풍물을 치며 신명나게 노는 것을 말한다.
호미걸이는 두레문화의 공동노동 형태의 하나로 일과 놀이를 중시했던 과거 농경문화를 반영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특히 호미라고 하는 농사도구를 매개로 해서 공동체의 노동과 휴식, 의례를 이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