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청화 영빈이씨 묘지·명기 및 석함 ( ·)

백자청화 영빈이씨 묘지
백자청화 영빈이씨 묘지
공예
유물
문화재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묘에 부장하기 위해 제작한 묘지와 명기.
정의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묘에 부장하기 위해 제작한 묘지와 명기.
개설

백자청화 영빈이씨 묘지·명기 및 석함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묘지는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묘주의 행적과 가계 등을 적어 넣었으며, 명기는 제기의 형태를 본뜬 20점이다.

내용

1970년에 연세대학교 경내에 있던 수경원(綏慶園)을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으로 옮기면서 발굴조사 때에 출토되었다. 수경원은 영빈이씨(暎嬪李氏, 1696∼1764)의 묘이다. 영빈이씨는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의 어머니이다. 아들 사도세자가 사망한 2년 뒤인 1764년(영조 40) 7월 26일에 경희궁(慶熙宮) 양덕당(養德堂)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이듬해 ‘의열(義烈)’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훗날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되면서, '소유(昭裕)'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의열묘는 원(園)으로 승격되어 ‘수경원’이 되었다.

특징

묘지는 조선시대 묘지석의 기본 형태인 장방형을 띠고 있는 청화 백자다. 처음 제작한 두 벌이 각각 방형 석함 안 모래에 담겨져 출토되었다. 한 벌은 5장으로 완전하며, 다른 한 벌은 4장으로 3번째 장이 소실되었다. 묘지의 각 측변에는 ‘영빈 전의이씨 묘지 제□(暎嬪全義李氏墓誌 第□)’이라 쓰였고, 하단에는 ‘공오(共五)’라고 써져 있어 모두 5장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태토(胎土)는 설백색으로 청화의 발색이 좋고, 글자의 번짐이 없다. 소성 당시 뒷면의 유약을 닦아내고 바닥에 놓고 구워서 휘거나 뒤틀린 것이 거의 없는 점으로 보아, 뛰어난 번조 상태와 제작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묘지의 크기는 가로 16.3㎝, 세로 21.7㎝로 계선을 긋고 그 안에 글자를 적어 넣었다. 묘지명은 9줄 15자씩 구성되었으며, 글자체는 해서체이다. 영조가 ‘어제 영빈이씨 묘지(御製暎嬪李氏墓誌)’라는 제목으로 묘지문을 직접 지었으며, 글씨는 마지막장에 ‘금성위 신박명원 봉교서(錦城尉臣朴明源奉敎書)’란 글귀로 보아, 화평옹주(和平翁主)와 혼인한 금성위 박명원이 썼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영빈이씨의 가계와 성품, 영조와의 사이에서 낳은 1남 6녀의 자식에 관한 내용, 영조가 표한 애도의 마음 등이 기록되었다.

명기는 모두 20점으로 보(簠)·작(爵)·준(罇)·향로·호·접시 등 제기를 본뜬 작은 부장품으로 왕실의 격에 맞게 구성되었다. 새하얀 태토와 유색이 매우 정갈하고 바닥 또한 고운 모래로 받쳐 구운 후 갈아내어 역시 정갈하다. 특히 보는 전면에 음각 문양을 새겨 넣었으며, 술잔인 삼족형의 작과 제사 때 술이나 명수(明水)를 담던 준도 눈에 띈다. 일부가 파손된 것이 있고, 호의 경우 유약이 서로 붙어 몸체와 뚜껑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유지되었다.

석함은 모두 3개로, 각각 2벌의 묘지와 명기를 담았던 것이다. 석함 내부에 홈을 파고 묘지와 모래를 번갈아 놓은 상태로 출토되었다. 석함 2개의 뚜껑은 남아 있으나, 하나는 뚜껑이 결실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왕실 관련 유물로서 묘의 주인과 제작 연대가 확실하여 도자사적, 역사적, 서지학적으로 가치가 크다. 묘지석은 처음부터 분원리 가마에서 두 벌을 동시에 제작한 것으로, 서체는 같으나 청화 발색과 보존 상태가 서로 다르다. 또한 묘지와 명기가 석함과 함께 잘 남아 있는 드문 예이면서 제작 수준도 매우 높은 귀중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서울의 문화재(증보판)』3(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1)
문화재청(www.cha.go.kr)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방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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