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1월 6일 건국동맹 맹원이자 조선인민당과 근로인민당의 중앙위원 출신 김문갑을 중심으로 결성된 혁신계 사회단체이다. 간부진은 위원장 김문갑, 부위원장은 김성립과 김형대, 국제부장 겸 선전부장 김진정, 재정부장 김인봉 등이었다. 영세중립화통일추진위원회는 1960년 4·19 이후 사회대중당 마산시당 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 7·29 총선 직후 당이 분열하자 혁신정당운동을 포기하고 새로운 대중운동을 모색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 10월 20일 미국의 상원의원 맨스필드(민주당) 가 한국의 통일문제를 중립화와 같은 토대에서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연설했고, 이를 계기로 ‘외국군 철수와 남북한의 자주적인 교섭으로 한국의 영세중립화통일’을 추진하겠다는 목표 아래 조직되었다.
1960년 11월 1일 조직 결성을 모색한 회합을 가진 뒤 11월 6일 마산 무학국민학교에서 영세중립화추진위원회 발기대회 및 강연회를 개최하며 발족했다. 이날 김성립과 김진정 등은 “우리는 민족자주적인 역량으로 영세중립화를 기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고, 11월 28일 김문갑 등 간부진이 상경하여 국회와 국회 기자실, 주한미국대사관 등을 방문하여 영세중립화 통일을 주장하는 선전물을 배포했다.
단체의 회원 대부분은 마산과 인근 지역인 충무와 고성 출신일 정도로 조직의 세력과 규모도 미약하였으나, 1961년 상반기 2대악법반대투쟁 당시 마산지역에서 투쟁을 주도하였다. 3월 25일 마산무학국민학교에서 열린 ‘2대특별법반대시민궐기대회’에 대회장으로 부위원장 김성립이 추대되어 “이대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민주당이 자기들의 영구집권을 위하여 제정하려는 것이니 우리는 동법 제정을 결사코 반대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시작으로 간부진들이 연설과 가두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한 뒤 해산되고 간부들은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위반 혐의로 혁명재판에 기소되어 반국가행위자로 처벌받았다.
이후 2009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5·16 쿠데타 직후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으며, 법원의 재심과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권고하였다. 특별법을 근거로 고 김문갑·김성립의 아들이 법원에 재심 청구를 하였고, 2013년 5월 6일 창원지방법원 마산 지원 형사부는 이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