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해 조선산 쌀의 일본 이출량이 늘어나자, 일본산 미가(米價) 역시 낮은 수준에 고착되었다. 특히 추수 직후에는 조선산 쌀이 일시에 이입되어 곡가를 폭락시키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곡가에 대한 일본 농민층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일본 의회도 거듭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1928년부터 조선산 쌀의 일본 이출량과 이출 시기를 조절하기 위한 회사 설립을 추진했다.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창립총회는 1930년 11월 5일에 개최되었고, 설립 목적은 ‘조선산 미(米)의 이출 조절을 위한 창고 업무를 수행하고, 일반 화물의 보관, 위탁판매, 운송, 화재보험의 대리 및 이들에 부수한 업무를 겸영(兼營)’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자본금은 100만원이었고, 본점은 경성부 남대문통 2정목 5번지에, 지점은 미곡 이출 항구인 인천·진남포·부산·군산·목포에 두었다.
주주는 조선 내 미곡 이출업자와 대지주들로서, 사장은 송정방치랑(松井房治郞, 전 경성부윤)이었으며, 전무이사는 다츠가와 로쿠로(立川六郞)였다. 조선인으로는 이사에 박영철(朴榮喆), 감사에 김상섭(金商燮)이 선임되었다.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는 해방 후 6.25 전쟁 전까지 존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