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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학교(北一學校)

교육단체

 1917년 1월 중국 혼춘현(琿春縣) 대황구(大荒溝)에 설립된 민족교육기관이자 군사 양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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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17년 1월 중국 혼춘현(琿春縣) 대황구(大荒溝)에 설립된 민족교육기관이자 군사 양성소.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설립목적
나자구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가 자금난과 일본의 압력으로 폐교된 뒤 이동휘(李東輝,1873∼1935)가 반일애국자들과 독립군 사관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1917년 1월에 이동휘는 혼춘 대황구의 반일애국자들인 양하구(梁河龜), 김도연(金道硯), 김남극(金南極) 등과 협의하여, 1909년에 설립된 소학교 과정의 동창학교(東昌學校)를 흡수·확대하여 북일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동휘가 명예교장에 추대되었고, 대황구 사장(社長)인 양하구가 교장을 맡았으며, 동창학교 교장인 김남극이 부교장을 맡았다. 동림무관학교 교사를 지낸 오영선(吳永善)과 고경재를 비롯하여 남공선(南公善), 김립(金立), 김하정, 이용(李鏞)과 중국인 우(于)선생이 교원을 맡았다. 학생은 동창학교생 20명과 동림무관학교에서 온 20명을 합하여 40명으로 시작하였다.
입학 순서와 나이를 고려하여 군사과, 정치과, 성경과의 3개반으로 구분하여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초기에는 6개월∼1년 과정의 소학 과정과 중학 과정을 두었다. 농사철에는 교사와 학생이 수업을 중단하고 농사를 짓는 일종의 둔전제로 운영하였다. 군사 교육과 훈련은 고경재와 김립, 역사는 남공선과 김하정, 정치는 양하구, 영어는 이용, 수학, 물리, 화학 등 자연과학은 양하구, 성경은 박태완이 담당하였고, 중국어는 중국인 우선생이 맡았다. 러시아혁명 이후인 1918년에 오영선, 남공선, 김립, 장기영 등이 러시아 연해주로 떠나면서 혼춘이나 대황구 출신의 교원이 들어 왔다. 특히 북일학교나 동림무관학교 졸업생들이 교원으로 참가하였다. 1919년 8월 6일에 일제의 압력으로 혼춘지방당국이 해산령을 내려혼춘현 권학소 소관의 ‘혼춘현립 제6국민학교’로 학교 이름을 바꾸었지만, 교원과 학생의 구성은 변화가 없었고 이후에도 독립군 양성소의 역할을 유지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기능과 역할
북일학교는 동림무관학교가 지닌 군사학교의 전통과 동창학교가 갖춘 지역기반을 토대로 설립되었다. 교육이념은 기독교 정신과 반일민족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독립전쟁 수행에 필요한 사관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이 학교의 양하구와 노종환 등이 1919년 혼춘 지역 3·13 운동을 주도하는 등, 교사와 졸업생들은 3·1운동 이후 혼춘 지역을 비롯한 북간도와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많은 독립운동단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0년 ‘간도참변’으로 사실상 폐쇄될 때까지 4년 여동안 2백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3년)
반병률(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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