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關東大虐殺)
1920년대 전반 일본은 하나의 큰 시대적 전환기에 직면하였다. 밖으로는 코민테른의 활동이 동아시아에 미쳐 한국·중국의 민족해방운동이 격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안으로는 공황으로 노동운동·농민운동·부락해방운동이 사회의 저변을 뒤흔들었다. 여기에 일본의 군부와 국가주의자들은 ‘과격사회운동취체법’ 제정을 시도하고, 이들 운동에 대한 탄압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때 일어난 대지진으로 민중이 공황 상태로 빠져 버리자, 일본 군부와 군국주의자들은 당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민중의 보수적 감정을 이용하였다.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인 1923년 9월 1일 오후경시청(警視廳)은 정부에 출병을 요청함과 동시에 계엄령 선포를 준비하였다. 내무 대신 미즈노(水野鍊太郎 :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