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현왜구사건(庇仁縣倭寇事件)
태종은 즉시 도내의 시위별패(侍衛別牌)·하번갑사(下番甲士)·수호군(守護軍) 등을 징집, 대비하게 하고, 성달생(成達生)을 경기·황해·충청도수군도처치사에, 이각(李恪)을 경기수군첨절제사에, 이사검(李思儉)을 황해도수군첨절제사에, 왕린(王麟)을 충청도도수군절제사에, 해주목사 박령(朴齡)을 겸황해도병마도절제사에 임명하였다. 또한 박은(朴訔)의 건의에 따라 항왜(降倭) 평도전(平道全)을 충청도조전병마사(忠淸道助戰兵馬使)로 삼아 반왜(伴倭) 16명과 함께 왜구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번 침입에서 왜적은 병선 7척을 불태우고 비인현을 공함(攻陷)해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 싸움으로 도두음곶만호 김성길(金成吉)이 아들과 함께 전사했으며, 아군의 태반이 전사하는 등 피해가 컸다. 때문에 왜구의 이번 침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