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창(義昌). 자는 호부(浩夫).
조선개국 초 여러 관직을 거쳐, 판사재(判司宰)·호조전서(戶曹典書)·판통례(判通禮)·병조참의(兵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1398년(태조 7) 강주진첨절제사 겸 강화부사(江州鎭僉節制使兼江華府使)가 된 뒤 강계절제사·경원삭주병마사·홍주목사 등을 거쳐 1419년(세종 1) 황해도도절제사 겸 판해주목사가 되었다.
이 때 태종과 함께 세종이 해주 등 여러 곳을 순행하자 관찰사 이숙무(李叔畝)와 같이 맞이하였는데, 세종은 비록 도백과 수령의 차서(次序)가 있으나 박령이 구신(舊臣)임을 들어 관찰사보다 상좌에 앉도록 명하고, 어의(御衣)를 하사하는 한편 환궁 뒤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품시켰다.
1421년 좌군도총재(左軍都摠制)에 오르고 그 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근검하고 무예에도 능통하였다. 박령이 죽자 하룻동안 국무를 중단하고 조의를 표하였으며 중궁(中宮)도 사람을 보내어 조문하고 황촉(黃燭) 10정(丁)이 하사되었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