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1409년 순금사사직(巡禁司司直)으로 왕족간의 이간을 꾀한 김첨(金瞻)을 체포하였는데 같은 죄목에 관련되어 조사를 받던 이무(李茂)에게 기밀을 누설한 죄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울진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 1416년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이 되었으나, 뒷날의 공을 생각하고 왕명에 의해 연금되어 있는 세자궁에 야음을 이용하여 담을 넘어가 주연을 베풀고 세자를 집에 여러 차례 초청, 두 형 구종지(具宗之)·구종유(具宗猷)와 주색으로 향응하고 매와 비단 등을 뇌물로 바친 사실이 탄로나 경성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연안부(延安府)에 유배된 이숙번(李叔蕃)에게 사람을 보내 세자에게 바치기 위해 활과 말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참수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