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태조 1) 8월에 개국공신도감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설치하였다. 관원으로 판관(判官) 2인과 녹사(錄事) 2인을 두고 개국공신 44인에 대한 위차(位次)를 정하여 포상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그해 9월 공신도감의 상언(上言)을 받아들여 1등에 배극렴(裵克廉) 등 17인, 2등에 윤호(尹虎) 등 11인, 3등에 안경공(安景恭) 등 16인으로 구분, 공신의 훈호(勳號)와 함께 토지·노비·구사(丘史)·진배파령(眞拜把領)을 각각 차등을 두어 사급(賜給)하였다.
이어서 1417년(태종 17)에 개국공신도감을 공신도감(功臣都監)으로 고치고, 상호군 심보(沈寶)를 사(使), 호군 윤희리(尹希夷)를 부사(副使), 종묘령(宗廟令) 한혜(韓惠)를 판관으로 임명하였다. 공신도감에 명하여 공신적장(功臣嫡長)들도 공신과 함께 중삭연(仲朔宴)에 참석하도록 하였다.
1434년(세종 16)부터 공신도감을 공신들의 관부로서 충훈사(忠勳司)라 개칭하고, 다시 1454년(단종 2) 충훈부(忠勳府)로 승격시켜 공신에 관한 일체의 업무를 관할하게 하였다.
이후 공신을 정할 일이 있으면 임시로 공신도감을 설치하고, 여기서 의정부·삼사(三司)와 함께 봉군(封君) 대상자 훈공(勳功)을 심사하여 1·2·3등으로 나누어 훈호를 내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