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의 세계(世系)가 명나라의『대명회전(大明會典)』에 이인임(李仁任)의 후손으로 잘못 기록되자, 이를 정정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사절을 파견, 종계의 개정에 성공하였다.
이에 1590년(선조 23) 그 동안 사절로 명나라에 다녀오거나 또는 주문(奏文)을 지은 이로서 공로가 뚜렷한 사람 19인을 선정, 이들을 다시 세 등급으로 구분하여 논공한 뒤 공신에 책봉하였다.
일등은 3인으로, 1589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가서 개정된 『대명회전』전질을 가지고 돌아온 윤근수(尹根壽)에게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을, 1584년 종계변무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가서 개정, 간행된 『대명회전』을 확인하고 돌아온 황정욱(黃廷彧)에게 장계부원군(長溪府院君)을 내렸다.
1587년 주청사로 명나라에 가서 중수된『대명회전』가운데 조선에 관계된 한 본(本)을 받아온 유홍(兪泓)에게 기계부원군(杞溪府院君)을 봉하고, 이들을 수충공성익모수기광국공신(輸忠貢誠翼謨修紀光國功臣)이라 하였다.
이등은 7인으로, 1573년 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이후백(李後白)에게 연양군(延陽君)을 추봉하고, 1575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종계변무를 주청한 홍성민(洪聖民)에게 익성군(益城君)을, 1577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윤두수(尹斗壽)에게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을 내렸다.
1584년 종계변무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한응인(韓應寅)에게 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을, 158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다녀온 윤섬(尹暹)에게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을 내렸다.
1589년 성절사로서 종계변무를 주청한 윤형(尹泂)에게 무릉부원군(茂陵府院君)을, 1584년 변무사의 역관(譯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홍순언(洪純彦)에게 당릉부원군(唐陵府院君)을 봉하고, 이들을 수충공성익모광국공신(輸忠貢誠翼謨光國功臣)이라 하였다.
삼등은 9인으로, 생전에 종계변무의 주문을 지은 기대승(奇大升)에게 덕원군(德原君)을, 1563년(명종 18) 종계변무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곳 객사에서 죽은 김주(金澍)에게 화산군(花山君)을 각각 추봉하였다.
이 밖에 이양원(李陽元)에게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을, 황림(黃琳)에게 의성군(義城君)을, 윤탁연(尹卓然)에게 칠계군(漆溪君)을, 정철(鄭澈)에게 인성부원군(寅城府院君)을, 이산해(李山海)에게 아성부원군(鵝城府院君)을, 유성룡(柳成龍)에게 풍원부원군(豐原府院君)을, 최황(崔滉)에게 해성군(海城君)을 각각 봉하고, 이들을 수충익모광국공신(輸忠翼謀光國功臣)이라 칭하였다. →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