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세동 선생 묘(范世東 先生 墓)
묘비 이수 부분의 연잎 무늬, 문인석의 각이 진 관모 등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경내에는 범세동의 존비속 제단이 있으며 상석·양석·동자석·망주석 등은 근래에 보충한 것이다. 범세동의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이다. 1369년(공민왕 18) 과거에 합격하여 덕령부윤(德寧府尹)·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낸 문관으로,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키고 두문동에 은거하였다가 나주(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로 돌아왔다. 화해사전(華海師全)과 화동인물총기(話東物叢記)를 저술하였다. - 「범세동선생묘」(송정현·이상식, 『문화재조사보고서』, 광주광역시, 1997) - 『문화재도록』(광주광역시,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