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주의(象徵主義)
한국에서 상징주의를 도입한 것은 백대진(白大鎭)에 의하여 시작되지만(‘二十世紀初頭 歐洲文學大家를 追憶함’, 新文學, 1916.5.), 본격적 도입은 그의 <최근 태서문단>(태서문예신보 9호, 1918), 김억(金億)의 <쏘로굽의 인생관>(태서문예신보 7∼14, 1918.11.30.∼1919.1.13.), <프란쯔 시단>(태서문예신보 10∼11호, 1918), <스핑스의 고민>(폐허 창간호, 1920), 그리고<근대문예>(개벽 21호, 1922.3.), 황석우(黃錫禹)의 <일본 시단의 2대 경향>(폐허 창간호, 1920) 등에 의하여 활성화된다. 여기에 최승만(崔承萬)의 <문예에 관한 잡담>(창조 4, 1920), 주요한(朱耀翰)의 <일본근대시초>(창조 1호, 1919.2.), 임노월(林盧月)의 <최근의 문예운동>(개벽 28호, 1922), 박영희(朴英熙)의 <악(惡)의 화(花)를 심은 보들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