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고종 23) 조불통상수호조약 체결 후 신교육과 기독교정신을 보급하고자 하는 천주교계의 열망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1892년에 약현성당(현 서울중림동성당)이 세워졌다. 약현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으로, 1977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약현성당에 부임한 신부 두세(Doucet, 1853∼1917)가 1895년(고종 32) 약현서당이라는 어린이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곧 가명학교의 기반이 된다.
여성교육에 관심을 둔 주임 신부 두세는 1901년 여학교를 창설하였으나 1904년 러일전쟁으로 인해 폐교되었다. 1906년 남학교교사를 신축하여 약명학교(藥明學校)로 명명하고, 여학교를 다시 개교하였다. 1909년에는 2개의 학교를 병합하여 가명학교로 교명을 바꾸었으며, 1919년 박영조(朴永祚)가 초대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23년에는 남녀학교를 병합하여 사립 가명학교로 개편하였다. 당시 학생수는 약 350명이었으며, 수업연한은 4년제로 운영되었다. 1925년에 가명보통학교로 인가받음과 동시에 유자격 교원으로 대체하였다. 1927년에는 가명유치원을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운영하고 있으나, 가명학교는 격심한 재정난으로 6ㆍ25전쟁 때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