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토기·채문토기원저호(彩文土器圓底壺)·난각형토기(卵殼形土器)·채도(彩陶) 등으로도 부른다. 어깨부분에 흑색 가지무늬가 있는 항아리형 토기로, 크기는 대체로 높이 20㎝, 너비 20㎝ 내외이다. 돌알갱이가 섞이지 않은 고운 바탕흙을 사용했고, 표면이 곱게 손질되어 있으며 색조는 대부분 밝은 갈색을 띠고 있다. 흑색 가지무늬는 토기를 가마에 넣고 구운 뒤 고온을 유지한 상태에서 식물질을 대어 탄소를 침염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중국 화북지방의 양사오문화〔仰韶文化〕에서 많이 보이나, 우리나라 것과는 연대 차이가 크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내몽고나 만주지방을 거쳐서 들어온 아류인 것 같다.
이제까지 출토된 예가 약 10여 점에 이르지만, 함경북도 웅기군 송평동, 충청북도 제천시 황석리 출토의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상남도 사천·진양과 전라남도 화순·순천 등 한반도 남단 중심부에만 분포가 한정되어 있다. 송평동 출토는 세부문양과 형태 등에 남부토기들과 차이를 보여, 현단계로서는 동일계통 여부에 대해 단정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붉은간토기와 바탕흙과 모양이 같고 남방식 고인돌과 돌널무덤 등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까지 같아서, 그 기원이 붉은간토기에 있으며 제작방법만을 달리한 것으로 믿어진다. 대부분이 분묘에서 출토되었으나, 진양 대평리1호 주거지에서 붉은간토기와 함께 출토된 예도 있다.
밀양 전사포리 에서 출토된 가지무늬토기는 전면에 붉은 물감이 채색되고, 마연된 토기에 가지무늬가 새겨진 특수한 가지무늬붉은간토기이다. 화순 장학리 고인돌 출토 가지무늬토기 속에서는 그물추 1개가 발견되었는데, 혹시 풍어(豊漁)와 관계된 주술적 의미를 지닌 비실용기였는지도 모른다. 형식변천 또한 전형적인 붉은간토기둥근바닥항아리와 같은 것으로 믿어진다. 장학리 출토유물로 미뤄볼 때 대체로 서기전 5세기 초에 이런 형식의 토기가 출현했다고 생각된다.
가지무늬토기의 분포가 남한지역에 한정되지만 그 문양만으로 살펴본다면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남부지역과의 교류를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