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감산사를 짓기 위하여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 연간에 중아찬 김지성이 희사한 토지 등의 재산.
내용
김지성은 719년(성덕왕 18년) 2월 15일에 자신의 감산장전을 희사하여 감산사를 창건하고 이어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과 석조아미타불입상(石造阿彌陀佛立像)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두 불상의 「광배명문(光背銘文)」에 의하면, 김지성은 상사봉어(商舍奉御)·집사시랑(執事侍郞) 등 고위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국왕, 이찬(伊湌) 개원공(愷元公), 부모·동생·누이·전처(前妻)·후처(後妻) 등 자신의 가족 그리고 일체 중생의 복을 빌기 위해 감산사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미륵보살입상은 돌아가신 어머니 관초리부인(官草里夫人)을 위해, 아미타불입상은 망고(亡考:아버지) 인장(仁章) 일길간(一吉湌)을 위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듬해 720년 발원자인 김지성이 죽자 석조아미타불입상에 추가로 명문을 새겨 김지성의 명복도 함께 빌게 되었다. 현재는 두 불상을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1962년 지정),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1962년 지정)으로 지정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上)
- 「성덕왕대 전제왕권(聖德王代 專制王權)에 대한 일고찰(一考察)-감산사 미륵상-아미타상명문(甘山寺 彌勒像·阿彌陀像銘文)과 관련하여」(김영미, 『이대사원(梨大史苑)』22, 1988)
- 「신라법상종(유가종)[(新羅法相宗(瑜伽宗)]의 성립문제(成立問題)와 그 미술(美術) 상(上)」(문명대, 『역사학보(歷史學報)』62,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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