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언절구 13수로 『환재집(瓛齋集)』 권1에 실려 있다. 원래의 제목은 ‘강양죽지사십삼수배별천수재이공지임(江陽竹枝詞十三首拜別千秀齋李公之任)’이다.
강양은 합천의 옛 이름으로 옛날 가야의 땅이다. 신라 초기에 대량주(大良州)로 불리다가 경덕왕 때 강양군으로 고쳤다.
원래 죽지사는 지방의 풍속을 읊거나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칠언절구의 연작시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많이 지어졌다. 정약용(丁若鏞)의 ‘조선시(朝鮮詩)’ 선언에서 보이는 것처럼 소재를 우리의 것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한창이었고, 이러한 경향은 서사화(敍事化)의 풍조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합천의 고을 사또로 부임하는 친지를 전송하면서 몇 가지의 사전지식을 주느라고, 작자도 이러한 죽지사 창작 풍조에 따라서 합천의 역사와 풍속을 노래한 이 작품을 지어주었다.
서문에서는 합천의 내력을 간단히 설명하고, 본문에서는 역사·풍속·인물에 대한 주요 사항들을 칠언절구로 읊었다.
가실왕(嘉實王) 때 만든 가야금의 유래, 학사루(學士樓)와 최치원(崔致遠)의 문장, 조식(曺植)이나 이여송(李如松)의 해인사에 얽힌 전승, 『팔만대장경』, 함벽당(涵碧堂) 의 풍류, 고려 현종이 머물렀던 옥산의 궁터, 가야국 왕비가 지리산 신모(神母)가 되었다는 정견사(正見祠)의 설화 등을 다루었으며, 민속놀이나 굿에 대한 풍속까지도 시로 읊었다.
마지막 수에서는 예전에 이 고을을 훌륭하게 다스려 백성들로부터 칭송받았던 권진(權軫)처럼 아름다운 정치를 펼쳐 합천을 다시 새롭게 하라는 당부까지도 곁들였다.
구절구절 자세하게 주를 덧붙여, 이 작품은 서정적인 ‘합천읍지’라고도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