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의기(儀器)로 사용된 각종 방울들로서 간두령(竿頭鈴) 2점, 쌍두령(雙頭鈴) 2점, 조합식 X자형 쌍두령 1점, 팔두령(八頭鈴) 2점으로 된 일괄 유물이다.
원래의 출토지는 강원도 원주 지방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 충청남도 논산 지방에서 출토되었음이 새로이 밝혀졌고, 숭실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정문경(국보, 1971년 지정)도 함께 출토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간두령 2점은 포탄모양으로 아래쪽 끝부분에는 테두리가 형성되어 있다. 윗부분에 4개의 절개구(切開口)를 내고 속을 가로로 막아 그 속의 동환(銅丸)을 움직이게 한 방울이다. 나머지 아래쪽도 속이 비어 여기에 목봉(木棒)을 꽂아 사용한 것으로, 테두리에는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구멍이 뚫려 있어 수식(垂飾)을 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각 절개구 사이에는 네 줄의 집선문대(集線文帶)를 오목새김하였고, 절개구 아래에도 1, 2줄로 시문(施文)하였다. 그 가운데 1점의 문양대 중간에는 고사리무늬를 새겼다.
쌍두령은 아령모양으로 방울에는 4개씩의 절개구가 있고, 그 사이에 짧은 사선문대(斜線文帶)를 넣었다. 가지의 중앙부에는 장방형 구멍을 내어 자루를 꽂을 수 있게 하였고, 그 사이로 2줄의 짧은 사선문대가 있다. 2개의 구부러진 가지가 암수식으로 끼워진 조합식 쌍두령은 방울이 달린 끝쪽이 서로 교차되어 있다. 결합되는 부분에는 앞의 쌍두령과 같이 장방형 구멍을 만들었는데 방울 부분의 형태와 문양도 같다.
팔두령은 전체 형태가 8각으로, 8개의 방울은 전자와 같은 형태이나 절개구 사이에는 문양이 없다. 몸체는 단면이 약간 휜 모습이며 중앙부에 짧은 선을 이용한 원문대(圓文帶), 그리고 그 외부에 방향이 가지 끝과 일치되는 짧은 선을 외부로 갈수록 짧아지게 하였다. 전체로 보아 이등변삼각형을 이루게 한 8줄의 문양과, 밖으로는 3줄의 짧은 선을 돋을새김한 문양대가 있다. 그리고 중심부를 향하는 집선문대, 2줄의 단선문대(短線文帶)를 차례로 몸체의 윤곽과 평행하게 장식하였다. 뒷면에도 같은 형식의 문양이 있으며, 뒷면 중앙에는 1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유물들 대부분이 자루를 끼우기 위한 구멍이나 끈을 달았던 고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특수한 계급집단이 이 의식용기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삼한시대의 소도(蘇塗)에 대한 기록과도 연결될 수 있다. 이 유물들은 기술적 측면에서는 매우 정교하며, 문양의 구성도 방사상으로 나타나 일정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동의기(靑銅儀器)들이 출토된 유적은 그리 많지 않아 대체로 충청남도와 호남·영남 지역에 한정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주변지역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기 때문에 청동기시대에 남부 지방에 독특한 청동기 문화가 발달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