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산수정(山水亭) 정형초(鄭滎初)가 1686년(숙종 12)에 창건했다. 정형초는 조선 광해군 때 무릉동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 공신 동평군(東平君) 정종(鄭種)의 아들 정지운(鄭智耘)의 자손으로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전사하고 통정대부가 된 정응두(鄭應斗)의 후손이다. 지금의 주택은 1924년 후손 정수인이 중수한 것으로, 이전에 있던 안사랑채는 헐려 없어진 상태로 안채, 사랑채, 대문으로 구성되어있다.
경사지에 기단을 높게 축조하여 대지의 안쪽 높은 곳에 안채, 바깥쪽 낮은 곳에 사랑채를 둔 배치를 하고 있다. 안채는 ㄷ자형 평면을 하고 있는데, 돌출된 좌우측면은 중층구조로 아래에 부엌을 놓고 상부에 다락방을 두었다. 가구구조는 3량으로 몸채부분은 팔작지붕이고 좌우측 날개부분은 맞배지붕으로 홑처마다.
사랑채는 초익공계(初翼工系) 3량구조로 ㄱ자형의 배치에 남쪽 대청마루 2칸에는 계자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기둥머리는 초익공으로 처리되어 있고 내측에도 동일한 모양의 익공이 돌출되어 있다. 대공 형태도 보 방향으로 소로를 받쳐 모양을 낸 판대공에 다시 도리 방향으로 하단에 보이지 않게 상단에 익공과 같은 모양으로 사괘 맞춤하여 종도리를 받쳐주고 있다. 몸채부분은 팔작지붕이고 돌출된 쪽은 맞배지붕으로 처리하였다. 그 외에 대문채 1동, 창고 1동 등이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평면 구조는 다소 희귀하고 고식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