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내산국(萊山國)’ 혹은 ‘장산국(萇山國)’이라고도 한다.
신라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에 거칠산국(居漆山國)이 우시산국(于尸山國: 지금의 울산)과 함께 신라의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였기 때문에 탈해이사금을 섬기던 거도(居道)가 ‘마숙(馬叔)’이라는 말달리기 오락을 빙자하여 이들을 멸망시켰다. 이 때 거칠산국은 거칠산군(居漆山郡)으로 고쳐져 신라에 편입되었다. 이 시기 가야와 신라는 현재의 동부 경남인 울산·언양·양산·동래 지방에 대한 쟁탈전을 벌였다. 거칠산국과 우시산국은 탈해이사금때 거도의 공략에 의해 신라에 병합되었으나 탈해이사금의 사후 다시 가야에 복귀하였다. 가야에 회복된 거칠산군은 장산국 또는 내산국으로 호칭되었다. 수로왕(首露王) 사후 금관가야(金官加耶)가 쇠퇴하고 포상팔국(浦上八國)이 침공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유적으로는 동래 복천동 고분군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동래는 원래 거칠산군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동래(東萊)로 개명하였다고 하며, 또『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동래현은 장산국 혹은 내산국을 병합하여 거칠산군으로 삼았다가 경덕왕 때에 개명된 것이라고 하였다.
거칠(居漆)은 중세국어의 ‘겋―’, ‘거츨―’로서 일본어의 ‘카루(Karu: 刈)’, 몽고어의 ‘케르치(Kerci: 거칠)’ 등에 대응하는 말인데, 동래와 내산의 ‘래(萊)’, 장산의 ‘장(萇)’은 ‘려(藜)’·‘장초(萇草)’라는 식물로서 모두 황폐하고 거친 땅에서 자라는 풀이다. 한편 거칠을 ‘날이 갓샌다’는 서광(曙光)의 의미로도 이해하며 ‘갓’의 원음이 속음(俗音) ‘것’으로 음전(音轉)함으로서 ‘갓난이’ 또는 막 태어난 아이의 시명(始明)을 뜻하는 ‘갓밝이’로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거칠산국과 내산국·장산국·동래현은 ‘거칠다(荒)’를 매개로 하여 연결되는 명칭이라 하겠다. 그리고『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문왕(神文王) 때의 재상인 충원공(忠元公)이 장산국, 즉 동래현인 내산국 온천에 목욕하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는데,『고려사(高麗史)』지리지에도 동래현 소재 온천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