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타주 ()

목차
인문지리
지명
경상남도 거창과 진주 지역의 옛 지명.
이칭
이칭
거열성(居列城), 거열성(居烈城), 고타(古陀), 거타(居陀), 자타(子陀), 자타(子他)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상남도 거창과 진주 지역의 옛 지명.
내용

‘거타’는 ‘크다’와 같은 말로서 ‘큰 언덕’ㆍ‘큰 벌판’을 뜻한다. 거열성(居列城, 또는 居烈城)이라고도 하였으며, 고타(古陀)ㆍ거타(居陀)ㆍ자타(子陀 또는 子他) 등으로도 불리었다. 현재 거창읍 상리에 당시의 거열성터가 남아 있다.

662년(문무왕 2) 백제의 거열성을 빼앗아 주를 두었으며, 685년(신문왕 5)거타주를 나누어 청주(菁州: 지금의 진주시)를 두었다. 757년(경덕왕 16) 지방관제를 개혁하여 전국을 9주 5소경(小京)으로 할 때 지금의 이름인 거창군으로 고쳤으며, 이때 진주시ㆍ진양군 일대는 청주에서 강주(康州)로 고쳐져 9주의 하나가 되었다. 995년(성종 14) 지금의 이름인 진주가 되었으며 절도사를 두었다.

참고문헌

『지방행정지명사(地方行政地名史)』(내무부, 1982)
『한국지명총람(韓國地名總覽)』(한글학회, 1979)
『경상남도지(慶尙南道誌)』(경상남도지편찬위원회, 197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