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용범(鎔范)’이라고도 한다. 주물을 부어 만들려는 물건을 주조하는 틀로서 석제품(石製品)과 토제품(土製品)이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석제품이 압도적이다. 한국에서 발견되는 석제 주조품은 대부분 활석제(滑石製)이나, 일본에는 사암제(砂巖製)가 많은 편이다. 대체로 청동기 모양을 파낸 2개의 틀을 조합한 쌍범(雙范)형식이 많지만, 거울, 낚싯바늘 등을 만들 때에는 단범(單范)형식이고, 속이 빈 동종방울(銅鐸) 등을 만들 때에는 안쪽의 내범(內范)을 별도로 만들기도 한다.
용범(鎔范), 혹은 거푸집의 접합면 가장자리에는 주물을 부어 넣는 구멍인 탕구(湯口)가 마련되고 합범(合范)인 경우 양면을 맞추기 위한 합인(合印) 표시가 있어 짝을 맞추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거푸집의 실례를 보면 우선 비파형단검(琵琶形短劍)의 거푸집은 중국 요령(遼寧)지방의 조양현(朝陽縣) 승리향(勝利鄕) 황화구(黃花溝)의 거푸집 예가 2점 있는데, 한반도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부채꼴모양 청동도끼(扇形銅斧)로는 중국 동북지방과 한반도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었는데, 요녕성(遼寧省) 대련시(大連市) 강상·목양성·윤가촌(崗上·牧羊城·尹家村), 금현(金縣) 와룡천(臥龍川), 신금현(新金縣) 쌍방·벽류하(雙房·碧流河), 요양시(遼陽市) 이도하자(二道河子), 서풍현(西豊縣) 성신촌(誠信村), 능원현(凌源縣) 산관전(三官甸) 등의 여러 무덤유적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되었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선형동부 거푸집은 함경도 금야읍과 부여 송국리의 예가 있을 뿐이며, 2점 모두 집자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비파형 동투겁창(銅矛)의 거푸집은 함남 금야읍의 예와 같이 현재 한반도 출토 예만 있다. 화살촉 거푸집은 중국 동북지방의 서풍현 성신촌의 예가 있는데, 쌍날개의 유경식(有莖式) 4점이 하나의 거푸집에 틀이 만들어져 있다.
초기철기시대에 오면 오히려 한반도에서 거푸집의 출토 예가 많아진다. 우선 전남 영암의 일괄 거푸집이 유명한데, 전부 평면 장방형(長方形)의 직육면체로 한쪽 면을 이용한 거푸집이 4매, 양면 거푸집이 10매가 나타났다. 이 거푸집 세트는 B.C. 2세기경에 한국에서 제작 사용된 청동기 일체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이를 통하여 영암의 한 곳에서 당시의 장인집단이 전업적(專業的)으로 청동기를 제작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그 기종을 살피면 검, 창끝, 꺾창(戈)과 같은 무기와 도끼(斧), 끌(鑿), 사(鉈) 등의 공구류가 있는 반면, 청동방울 세트와 같은 의기(儀器)는 보이지 않는 점을 보아, 의기는 별도로 특별한 경우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암 이외에 다른 유적에서는 1∼2점 정도가 출토되었을 뿐이며, 동검 거푸집은 평양 장천리(將泉里), 경기 용인 초부리(草芙里)의 예가 있고, 동투겁창(銅矛)은 전라남도, 동종방울(銅鐸)은 평양 부근, 다뉴경(多紐鏡)은 평남 성천(成川)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그 외 하남(河南) 미사리(渼沙里)에서 출토된 토제(土製)의 구슬 거푸집이 있다.
다뉴동경의 성천 출토 예는 세문경(細文鏡)에서 볼 수 있는 단면 반원형의 주연부(周緣部)를 가졌지만, 무늬장식으로 볼 때 조세문경(粗細文鏡)에 해당하는 것이다. 영암의 거울 거푸집은 거울 뒷면 부분에는 아무런 무늬가 새겨지지 않은 데다가 꼭지가 2겹으로 겹쳐 있어 실제로 제작에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초기철기시대에 유행하는 다뉴세문경은 물론 금강유역에서 발견되는 대쪽모양동기와 방패형동기 등의 이형(異形) 청동기와 각종 청동방울은 지금까지 석제 거푸집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토제품을 이용한 밀납주조품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