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고등학교의 연원은 1885년 미국 기독교 북장로회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 한국명 원두우)가 한성 정동 자택에서 몇몇 학생들을 모아놓고 가르치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한다. 언더우드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신교육을 통하여 지도자와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성경을 비롯해 국어ㆍ영어 등을 가르쳤다.
1886년 3월 언더우드의 집에 붙어 있던 건물을 빌려 교사로 사용하면서 언더우드학당이라고 명명하였다. 여기서 학생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국어ㆍ영어ㆍ한문ㆍ역사ㆍ지리ㆍ자연과학ㆍ번역ㆍ음악ㆍ도화(圖畵: 미술)ㆍ체육ㆍ궁술ㆍ성경ㆍ교회사 등을 수학했다.
1893년 보통반과 특별반으로 나누어 보통반을 이수한 학생들에게는 특별반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실업교육에도 역점을 두어 수공과(手工科)를 설치하였다. 학생 수는 처음 10여 명에서 1890년 29명, 1894년 46명으로 늘어났으며, 그 중 15명은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초창기의 교사로는 언더우드ㆍ알렌(H. N. Allen)ㆍ목원홍(睦源弘)ㆍ윤치경(尹致景)ㆍ정태용(鄭泰容)ㆍ정동명(鄭東鳴) 등이 있었으며, 학생으로는 송순명(宋淳明)ㆍ안창석(安昌錫)ㆍ김유순(金裕淳)ㆍ김규식(金奎植)ㆍ안창호(安昌浩)ㆍ민충식(閔忠植)ㆍ서병호(徐丙浩) 등이 수학하였다. 1901년 교사를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으로 옮겨 중학과 신입생 6명으로 입학식을 거행하고, 경신소학교를 부설하였다.
1905년 경신학교로 개칭하고 본관 교사를 준공하였으며, 중학과 제1회 졸업생 1명을 배출하였다. 1906년 9월 배재학당과 연합하여 교육하다가 학생 수가 130명으로 늘어나자 다음해 6월 다시 분리하였다. 1908년 8월 12일 학부로부터 「사립학교령」에 따른 인가를 받았으며, 1915년 3월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의 모체가 되는 대학부를 설치하였다.
1915년 개정된 「사립학교규칙」에 반대하여 종교의식과 성경 교육을 고수하다 고등보통학교가 아닌 지정학교로 격하되었다. 1922년 「조선교육령」에 의하여 수업연한이 5년으로 개편되었고, 1938년 신사참배 거부로 미국 선교부가 학교 경영을 하지 못하게 되어 김홍량(金鴻亮)이 경영권을 인수하였다.
1941년 교사를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전하였고, 광복 후 남북분단으로 김홍량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1946년 김규식이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여 학교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1947년 수업연한이 6년으로 연장되었다가 「교육법」 개정에 의해 1951년 3년제 경신고등학교와 경신중학교로 개편되었다.
1955년 4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현재의 위치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1964년 학교법인 경신학원이 인가되었고, 1979년 경신역사관을 개관하였다. 1985년 10월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백주년 기념탑을 제막하였다.
학교명 ‘경신’은 ‘깨우쳐 새롭게’라는 뜻으로 새 시대의 길을 여는 선구자가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초기의 교훈은 ‘자유ㆍ평등ㆍ박애’였으나 현재의 교훈은 1953년에 제정된 ‘기독적 인격’이다. 다양하고 자율적이며 특성화된 교육을 목적으로 학생 자치활동,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독서교육, 정보화 교육, 다양한 체험학습, 방과후 교육에 역점을 두고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으로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상급반 학생들은 신설된 사립학교의 교사로 초빙되어 교육구국운동의 선봉에 나섰고, 1911년에는 일본어 과목 신설과 일본인 교원 채용에 반대하여 동맹퇴학운동을 벌였다.
1913년 105인사건 때에는 재학생들까지 연루자로 투옥되었고, 1919년에 3ㆍ1운동이 일어나자 전교생이 모두 참여하여 이듬해 졸업생이 단 1명에 불과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서울 지역의 동조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여 400여 재학생 중 180여 명이나 학교를 중퇴하는 등의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현재 음악부ㆍ미술부ㆍ문예부ㆍ방송부 등의 동아리를 중심으로 계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운동부는 축구부ㆍ유도부가 개화기 때 체육 보급에 기여했던 전통을 이어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교지로 1929년 창간된 『경신』을 발간하고 있고, 1949년부터 발간된 문예지 『성화(聖火)』는 이후 『경신문예지』로 제호를 바꾸어 발간하고 있다. 개교기념일인 10월 16일을 전후하여 특별활동 발표회를 열고 있으며, 1985년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념탑을 건립하고, 『경신 100년사』를 간행하였다.
2009년 현재 38학급에 총 1,386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교직원은 77명이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