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은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옛 지명으로, 초기국가시대에는 마한의 중심 지역이었다. 차령산맥을 기점으로 동쪽은 대목악군, 북쪽은 위례성, 남서쪽은 도솔이라 불렸다. 대목악군은 757년에 대록군, 940년에 목주현, 1413년에 목천군으로 개명되었다. 위례성은 687년에 사산현, 940년에 직산현, 1396년에 직산군으로 개명되었다. 도솔 지역은 930년에 천안부가 설치되고, 995년에 환주, 1309년에 영주, 1413년에 영산군, 1416년에 천안군으로 개칭되었다. 천안시는 2025년 기준 충청남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경양은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옛 지명으로, 초기국가시대에는 마한(馬韓)의 중심 지역이었다. 고려시대 아주(牙州)의 주1이 있었던 곳으로 뒤에 경양현(慶陽縣)으로 승격되었으며, 이곳에 영(令)을 두어 염장관(鹽場官)을 겸임하게 하였다. 조선총독령 11호에 의해 천안군과 목천현, 직산현을 합쳐 천안군으로 하였다. 직산은 성환면과 직산면, 입장면, 성거면 등 4개 면으로 형성된 작은 소읍이었으며, 경양현[혹은 경양면]과 안중면(安仲面), 외야곶면(外也串面), 언리면(堰里面) 등 네 곳을 월경지로 두었다. 경양면은 1906년(광무 10) 평택군 경양면으로 바뀌었다. 경양현은 현재 지명에서 찾기 어렵지만, 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탁두리와 신대리, 본정리, 노양리 일대로 비정된다.
초기국가시대에 마한의 중심에 있었던 천안 지역은 차령산맥[금북정맥]을 기점으로 동쪽은 대목악군(大木岳郡), 북쪽은 위례성(慰禮城), 남서쪽은 도솔이라 불렸다.
대목악군은 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대록군(大麓郡),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에 목주현(木州縣), 조선시대인 1413년(태종 13)에 목천군(木川郡)으로 바뀌었다. 위례성(慰禮城)은 신라시대인 687년(신문왕 7)에 사산현(蛇山縣), 고려시대인 940년에 직산현(稷山縣), 1396년(태조 5)에 직산군(稷山郡)으로 개칭되었다. 도솔 지역에는 930년(태조 13)에 천안부(天安府)가 설치되었으며, 995년(성종 14)에 환주(歡州), 1309년(충선왕 1)에 영주(寧州), 조선시대인 1413년에 영산군(寧山郡), 1416년에 천안군(天安郡)으로 개칭되었다.
경양은 직산현(稷山縣) 북서쪽 40리에 있었다. 천혜의 지리적 · 전술적 요충지여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역사적 ·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본래 토착성이 강한 지역이라 고려 태조(太祖: 877~?)가 민심을 수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던 지역이다. 조선 전기 직산현에 통합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직산군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군현의 규모가 작았던 충청도는 두세 개 군현을 한 군으로 통합하였다. 이에 따라 1896년(고종 33) 현에서 군으로 승격한 목천군과 직산군이 1914년에 천안군과 합쳐서 천안군으로 개편되었다. 통폐합 이전에 천안군은 11개 면, 목천군은 9개 면, 직산군은 9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개편된 천안군은 14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목천군과 직산군은 삼한시대에 개설되었다. 고려 전기인 930년 천안군을 분리하여 3개의 군현 시대를 열었고, 1,000년이 지난 1914년에 다시 통합되어 하나의 천안군이 되었다. 현재 직산현 현아는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목천현 현아는 목천초등학교 부지로 제공되어 현아 앞에 있던 괴목들이 목천초등학교 운동장 가에 남아 있다.
천안군 영성면은 1920년 천안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31년 천안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 천안시로 개편 승격되면서 천안시와 천원군(天原郡)이란 이름으로 분리되었다. 1991년에 천원군의 명칭이 향토 역사 문화와 관계가 없다고 하여 국회에 청원하였고, 개명안이 결의되어 천안군이 되었다. 1995년 천안시와 천안군이 통합되어 도농 통합시인 천안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