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쌓은 성벽으로, 원형은 신라 제13대 미추왕릉(味鄒王陵)과 천마총(天馬塚)·황남대총(皇南大塚) 등이 자리하고 있는 대릉원(大陵園)의 남쪽 입구부터 동쪽으로 황오동고분군(皇吾洞古墳群)까지 뻗었으며, 다시 북쪽으로 꺾이면서 북천(北川)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은 시가지가 확대되면서 대부분 흔적 없이 파괴되었고, 경주고등학교 서쪽을 지나는 일부만이 남아 있다.
1936년에 조사한 결과, 밑부분의 너비는 9.5m이고, 바깥쪽 벽의 높이는 3.5m이며, 안쪽 벽의 높이는 2m로 밝혀 졌다. 남쪽은 흙으로 쌓았지만, 북쪽은 돌로 쌓아 올렸다. 이 토루는 신라 고분군이나 반월성(半月城)과 연관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읍성에 수재(水災)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1012년(현종 3)에 경주에 축성을 하였다는『고려사(高麗史)』의 기록과『동경잡기(東京雜記)』에 고려 현종 때 전라·충청·경상 3도의 군졸을 동원하여 북천에 돌로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 그리고 현재의 위치나 두께 등을 종합하여 고려하면, 고려시대에 쌓았던 제방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