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42m. 경주 남산 서쪽의 용장사가 자리하였던 골짜기 정상 부근에 있다. 2층 받침돌의 아래층 받침으로 자연암석을 사용하여 특이하다.
아래층 받침 위에는 높이 약 6㎝의 굄 1단을 깎아 위층 받침돌의 면석을 받치게 하였다. 위층 받침돌의 면석은 1면만 하나의 돌이고, 나머지 3면은 두 개의 돌로 이루어져, 모두 7장의 널돌로 구성되었다.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을 하나씩 그대로 본떠 새겼고, 2장의 널돌로 덮개돌을 삼았다. 덮개돌 밑에는 서까래인 부연(附椽)을 두었고, 약간의 경사를 둔 윗면 가운데에는 네모난 2단의 몸돌 굄이 마련되어 있다.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으로 네 귀퉁이에 모서리 기둥이 있을 뿐이며, 2층부터몸돌의 높이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각 층의 받침이 4단이고, 추녀는 직선으로 되어 있지만 처마와 처마가 마주치는 전각(轉角) 윗면에서 경쾌한 반전(反轉)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 윗면인 낙수면의 정상 부분에는 위층의 몸돌을 받기 위해서 1단의 굄을 두었는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없어졌고, 3층 지붕돌 윗면에 석탑의 중심 기둥 자리였던 찰주공(擦柱孔)만이 남아 있다.
이 석탑은 일찍이 무너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지금처럼 다시 세웠다. 당시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2층 몸돌 윗부분의 한변에 사리를 모시기 위해서 파 놓은 가로 15.2㎝, 세로 13.1㎝ 크기의 네모난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전망이 넓게 트인 산봉우리 위에 탑을 세운 사례는 통일신라시대에 가끔 볼 수 있는 것인데, 이 석탑은 바위 위에 세운 통일신라시대 석탑 가운데 대표적인 우수작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