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바위 면에 부조된 삼존불상과 그 앞의 돌기둥에 부조된 4구의 불상 등 모두 7구의 불상이 있어 칠불암으로 불려 오고 있다. 유구(遺構)의 상태로 보아 원래는 석경(石經)을 벽면으로 세운 일종의 석굴사원(石窟寺院)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삼존불상은 4.26m 높이의 바위 면에 꽉 차게 부조한 마애불로서, 거의 환조(丸彫)에 가까운 고부조(高浮彫: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로 되어 있다. 본존은 높이가 2.6m나 되는 거대한 좌상이며, 두 협시보살도 2.1m로 인체보다 훨씬 장대하다.
본존은 머리가 둥글고 크며 소발(素髮)에 큼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풍만하여 박진감이 넘치며, 부풀고 곡선적인 처리로 자비로운 표정을 띠고 있다. 즉, 부풀고 두껍게 처리한 눈두덩이라든가 쌍꺼풀진 오른쪽 눈, 부드러우면서도 양감나게 처리한 코, 세련된 입, 어깨까지 닿은 긴 귀 등 자비롭고 원만한 얼굴 모습을 성공적으로 묘사하였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으며, 어깨는 넓고 강건하여 건장한 가슴, 가는 허리와 더불어 당당하며 박진감 넘치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두 손이 유난히 큼직하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인데 상체의 옷주름은 곡선적인 계단식 주름이며, 옷깃이 반전(反轉)되었다. 하체의 옷주름은 큼직한 선으로 처리되었는데, 두 다리 밑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규칙적인 지그재그 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좌는 위로 향한 연꽃잎과 아래로 향한 연꽃잎의 이중연화좌로서 단판칠엽(單瓣七葉)은 잎들 사이의 잎에 중간선을 그은 특이한 형태로서, 9세기에 나타나는 독특한 연화문의 조형(祖形)으로 주목된다. 광배는 보주형(寶珠形)의 소박한 무늬를 두드러지게 표현하였다.
협시보살은 좌우 모두 동일한 모습에 비슷한 양식을 나타내고 있는데, 풍만한 얼굴, 벌어진 어깨, 당당한 가슴, 풍만하고 육감적인 체구, 유연한 삼곡(三曲)의 자세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왼쪽 보살은 꽃을 들고 있고 오른쪽 보살은 정병(淨甁)을 들고 있으며, 모두 본존 쪽을 향하여 몸을 약간 비틀고 있다.
이 삼존불 앞의 돌기둥에 새겨진 사방불은 높이가 2.23m 내지 2.42m 정도로 바위 모양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고 있는데, 네 상 모두 연화좌에 보주형 두광을 갖추고 결가부좌하였다. 동면상(東面像)은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으로 통견(通肩)의 법의가 다소 둔중하나 신체의 윤곽이 뚜렷이 표현되고 있다. 왼손에는 약합(藥盒)을 들고 있어서 약사여래로 생각된다. 남면상(南面像)은 여러 면에서 동면상과 비슷하나, 가슴에 표현된 군의(裙衣)의 띠 매듭은 새로운 형식에 속하며, 무릎 위의 옷주름, 짧은 상현좌(裳懸座)의 옷주름이 상당히 도식화되었다.
서면상(西面像)은 동면상과, 북면상(北面像)은 남면상과 서로 유사하나, 북면상은 다른 세 불상과 달리 특히 얼굴이 작고 갸름하여 수척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네 상의 명칭을 확실히 하기는 어려우나, 방위(方位)와 수인(手印)·인계(印契)에 의하여 볼 때 일단 동면상은 약사여래, 서면상은 아미타여래로 볼 수 있다.
이 불상군의 성격은 사방석주 각 면에 한 불상씩 사방불을 새기고, 그 앞의 바위에는 삼존불을 새겨 삼존불이 중앙 본존불적인 성격을 띤 오방불(五方佛)로서의 배치 형식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식적으로는 풍만한 얼굴 모습, 양감이 풍부한 사실적인 신체 표현, 협시보살들의 유연한 삼곡자세 등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1980년 지정)이나 경주 석굴암 석굴의 본존불좌상(국보, 1962년 지정),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1963년 지정) 등의 불상 양식과 상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불상군의 조성 연대는 통일신라시대 최성기인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