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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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정측면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정측면
조각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南山) 탑곡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마애불. 불상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慶州 南山 塔谷 磨崖佛像群)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72, 산79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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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南山) 탑곡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마애불. 불상군.
개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주시 남산 탑곡에 높이 약 9m, 둘레 약 26m의 큰 바위 4면에는 수십 구의 불보살상과 기타 조각이 새겨져 있다. 바위 남면은 산등성이와 연결되어 한 단 높은 대지를 이루고, 동·북·서면은 이보다 한 단 낮아 바위의 전체 높이가 9m 정도 된다.

내용

남면에는 석탑과 석등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탑은 최근에 복원되었다. 남면의 바위 면은 40㎝ 정도의 틈이 벌어져 두 면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삼존불상이 새겨져 있고 왼쪽에 상체만 보이는 나한상(羅漢像)이 부조(浮彫)되어 있다. 그 앞에 환조(丸彫)의 보살형 불상이 서 있고 그 옆의 바위에 또 하나의 나한상이 부조되어 있다.

삼존불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보살이 본존 쪽으로 몸을 비틀고 있다. 본존은 마멸이 심하여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지만, 동면 본존불과 유사하게 얕은 육계, 둥근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길고 유연한 상체에 넓게 퍼진 무릎이 특징적인 체구, 간명한 옷주름 선 등이 나타난다. 광배는 두광으로 원형 광배에 연꽃과 광선무늬가 있으며, 대좌는 만개한 연꽃무늬로 구성한 특이한 모양이다.

왼쪽 암면에 새겨진 나한상은 앳된 동안(童顔)의 모습과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옷자락으로 덮어 내린 동자승 모습이다. 환조상의 옆 바위에 새겨진 나한상은 옆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길고 복스러운 얼굴, 위엄 있는 자세 등을 뛰어난 수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면에는 삼존불상과 공양하는 승려상, 6구의 비천상이 있고, 왼쪽의 앞면에는 두 그루의 나무 밑에 참선하고 있는 승려상 그리고 그 앞 바위에 새겨진 보살형상 등 모두 11구의 불상과 보살상 등이 새겨져 있다.

삼존불의 중앙 본존은 둥근 얼굴에 눈은 가늘고 길며, 코 역시 길고 큼직하다. 입은 작고 미소를 머금고 있다. 상체는 유연하고 길며, 하체의 무릎은 유난히 넓다. 두 손은 앞섶의 옷자락 속에 넣고 있다. 광배는 둥근 두광(頭光)으로, 16잎의 연꽃과 36선의 광선으로 구성된 독특한 모양이며 대좌는 특이한 연꽃무늬이다.

왼쪽 협시보살은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긴 눈썹, 매부리코, 큼직한 입 등 이국적인 모습이다. 공양상(供養像)도 이국적인 얼굴인데 아마도 서역 계통의 인물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들의 위에는 상체만 보이는 비천상들이 날고 있다.

서면에는 나무 밑에 결가부좌한 불상 1구와 비천 2구가 새겨져 있다. 두 그루의 나무 밑에 앉아 있는 불상은 얼굴이나 체구는 거의 동면상과 흡사하다.

북면에는 9층탑과 7층탑이 서 있고, 탑 밑에는 마주보며 날뛰고 있는 괴수가 보이며, 탑 상륜부 사이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불상이 있다. 불상은 동면 본존과 흡사하며, 머리 위에는 화려한 보개(寶蓋)가 새겨져 있고, 9층탑의 상륜에 걸쳐 비천 1구가 불상을 향하여 날고 있다.

특징

충청남도 연기 지방의 비상(碑像)들의 구도와 유사한 점도 있지만, 이 부조들이 훨씬 자유분방하여 중국의 비상이나 남향당산(南響堂山) 제1동 등 석굴사원의 구도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불상들의 형태는 부드럽고 유연하며 얼굴의 양감이나 파격적인 고졸한 미소 등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이나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을 연상시킨다. 세부의 형식들, 즉 연꽃무늬나 두광배의 특징 등도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이나 비암사(碑巖寺) 비상들과 상통한다. 따라서 이 조각의 조성 연대는 7세기 중엽으로, 삼국 말기의 신라 조각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이 불상들은 석주 4면에 새겨져 있어 일종의 사방불로 보이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로 사방불의 수용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로 생각된다. 이 사방불은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과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의한 사방불이며, 이 절 이름이 명문 기와에 의하여 신인사(神印寺)로 밝혀졌으므로 신인종의 미술로 우리 나라 불교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사방불은 새로운 방위 개념을 체계화시킨,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의지를 나타낸 작품이 아닌가 한다. 사천왕사(四天王寺)가 신상(神像)으로 당군(唐軍)을 물리치고자 하였다면, 이 신인사방불은 사방불로써 마군을 항복받고자 조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국보』2-금동불·마애불-(황수영 편, 예경산업사, 1984)
「신라사방불의 기원과 신인사(남산탑곡마애불)의 사방불」(문명대, 『한국사연구』 18, 한국사연구회,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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