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왕실 및 불교 유적 관련 산.
개설
내용
황복사는 신라 왕실의 기복사찰이었는데, 절터 주변에서는 ‘황복(사)(皇福(寺))’, ‘왕복(王福)’과 같은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 삼층석탑 앞에 금당터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여러 개의 12지신상(十二支神像)이 묻혀 있다가 발견되었고, 그 남쪽에서는 2구의 석조 귀부가 파손된 채 남아 있었다. 또한 절터 주변에서는 글자가 새겨진 비 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비문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사적비나 탑비로 추정된다. 황복사터의 삼층석탑은 1942년에 중수할 때 발견된 2구의 순금 불상과 사리구를 비롯하여, 금동함에 기록된 탑지(塔誌)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7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왕실의 기복을 위하여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릉 아래에는 사천왕사터가 자리하고 있다. 사천왕사는 망덕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찰로, 문무왕 때 명랑(明郎)의 비법에 의하여 당나라 군사를 물리친 호국사찰이었다. 금당터 앞에 배치된 목조 쌍탑터는 통일신라시대 사원 건축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앞에 놓인 2구의 석조 귀부 가운데 하나가 문무대왕비였던 점도 사찰 건립의 배경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당시 활동하였던 조각의 명장(名匠)인 승려 양지(良志)의 작풍(作風)을 알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중요한 유적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동해남부선이 금당터와 강당터를 가로질러 개설되면서 유적 전체가 파괴되었다. 현재 원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낭산의 서북쪽에는 국립경주박물관을 바라보는 곳에 신라 말 유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이 책을 읽었다는 독서당이 남아 있으며, 그 아래에는 신라시대의 목탑터 또는 건물터가 있어 옛 자취를 살필 수 있다.
한편 독서당 남쪽에는 절터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석조십일면관음보살입상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그밖에도 일제강점기 때 옮겨진 석조관음입상을 비롯하여 여러 석탑의 부재가 흩어져 있다. 특히 독서당과 능지탑 사이에 자리한 중생사(衆生寺)의 마애지장보살상은 유례가 희귀한 피모보살상(被帽菩薩像)으로 알려져 있다. 능지탑 동쪽 마을은 강선리(降仙里)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옛 사적에 따라 붙여진 전통적 이름이며, 마을 주변에서도 흩어져 있는 탑재를 확인할 수 있다.
낭산은 경주의 역사·인문·지리적으로 중요한 산이며, 신라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산이다. 특히 선령이 깃든 신유림에 위치하여 신라 고유 정서와 불교가 함께 흔적을 남겼고, 호국사찰인 사천왕사와 망덕사가 자리하여 신라 국가를 지키는 호국사상이 부각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동경잡기(東京雜記)』
- 『동경통지(東京通誌)』
- 『신라낭산유적조사』(장충식, 동국대학교, 1985)
- 「경주전황복사지의 제문제」(황수영,『고고미술』97, 1968)
- 「경주낭산동록삼층석탑내발견품」(이홍직,『한국고문화논고』,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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