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천관사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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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관사지
경주 천관사지
건축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경주 천관사지(慶州 天官寺址)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91년 01월 09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43
목차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
내용

천관사는 천관(天官)의 집터에 세운 절로, 김유신(金庾信)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김유신은 젊었을 때 우연히 천관이라는 기생을 알게 되었는데, 깊은 정에 빠져 매일 그녀의 집에 찾아가곤 하였다. 이 사실을 안 김유신의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네가 장차 이 나라의 대들보가 되어 공명을 세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를 영화롭게 하기를 바랐는데, 천한 기생과 사귀어 스스로 귀함을 버리니 웬일이냐”고 물으면서 흐느껴 울었다. 김유신은 크게 뉘우친 뒤 “다시는 천관의 집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어느 날 김유신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를 태운 말이 어느새 천관의 집 앞에 이르러 멈추었다. 천관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김유신을 보자 기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였지만 감회를 억누르고 문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김유신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대장부의 결심을 헛되이 한 죄가 모두 말 때문이라면서, 말의 목을 벤 뒤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일로 인해 천관은 김유신을 사모하며 원망하는 노래인「원사(怨詞)」를 짓고서 죽고 말았다. 뒷날 김유신은 사랑하였던 옛 여인 천관을 위하여 그녀의 집터에 절을 세워 천관사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여, 당시 절의 전체적인 규모와 건물의 배치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곳곳에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석탑의 일부분과 기와 조각들이 논두렁의 잡석 틈에 끼여 남아 있다. 이 가운데에는 돋을새김된 2단의 굄대가 8각을 이루고 있는 2장의 판석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사가집(四佳集)』
『성호전집(星湖全集)』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4)
『한국민간전설집』(최상수, 통문관,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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