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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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에, 계명구락부에서 남상일·백남규가 조선의 문화 증진을 위하여 창간한 잡지.
계명(19호) 미디어 정보

계명(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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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1년에, 계명구락부에서 남상일·백남규가 조선의 문화 증진을 위하여 창간한 잡지.

개설

A5판.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기관지로 발행한 잡지로 1921년 5월에 창간하여 1933년 1월 통권 제24호로 종간되었다. 편집·발행인에 남상일(南相一)·백남규(白南奎), 주간은 심우섭(沈友燮)이다. 계명구락부는 조선의 문화증진에 공헌하며 구락부원간에 친목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1918년 조선의 지식인 33명의 발기로 창립되었다. 그리고 이 목적수행을 위하여 만든 잡지가 『계명』이었다.

내용

제18호와 제19호에 최남선(崔南善)의 「삼국유사해제」와 「살만교차기(薩滿敎箚記)」 및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 제20호에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등이 각각 실렸다. 제21호는 3년여 만에 속간되었고, 제24호는 창립 제15주년을 기념한 계명구락부 요람구실을 하였다.

논설을 발표한 주요논객들은 안국선(安國善)·민태원(閔泰瑗)·김억(金億)·심우섭(沈友燮)·유일선(柳一宣)·최남선·홍명희(洪命熹)·이광수(李光洙)·변영로(卞榮魯)·정인보(鄭寅普)·윤백남(尹白南) 등이었다.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이 광문회(光文會)에서 인계되어 추진되었으나 완선을 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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