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문인들의 계회 광경을 그린 그림.
개설
연원
『고려사』의 최당에 관한 기록이나 『동문선』의 「쌍명재기(雙明齋記)」를 통해 당시 「해동기로도」는 비단이나 종이에 그려지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항구적인 전승과 보전을 위해 돌에 새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인로(李仁老)의 「제이전해동기로도상(題李佺海東耆老圖像)」이라는 글을 통하여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해동기로회도」의 내용과 특징을 짐작할 수 있다. 참석자들의 모습은 조선시대의 초상화처럼 어떤 형식을 갖추어 그렸다기보다는 음악과 바둑 그리고 시와 술을 즐기며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개개인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정확하게 그렸고, 각 인물상 옆에 표지와 시문이 적혀 있다고 한 점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계회도와는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고려시대 계회도는 시문과 표지를 동반한 인물 중심의 묘사로 이루어져 중국의 서원아집도(西苑雅集圖)와 비슷한 형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내용
이처럼 산수를 위주로 그리던 계회도의 경향이 1550년경의 「호조랑관계회도(戶曹郎官契會圖)」나 「연정계회도(蓮亭契會圖)」 등에서와 같이 계회 장면의 비중이 배경인 산수와 대등해지는 변화를 보인다. 옥내에 자리하고 있는 계원들을 작게 표현하지 않고 훨씬 크고 자세하게 그렸다. 계회의 장면이 자연의 경관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보다 중요하게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16세기 중반에 일어난 큰 변화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 제작된 계회도들은 그 전의 사례와 달리 옥내에서 열리는 계회의 장면과 참석자들의 모습을 부각시켜 표현하였다. 그리고 배경에 산수를 그리지 않거나 그리더라도 초기에 비하면 훨씬 소극적인 방법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이기룡(李起龍)이 1629년(인조 7)에 그린 「이기룡필 남지기로도(南池耆老圖)」를 비롯한 조선 중기의 계회도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계축보다는 화첩 형식의 계첩이 유행하였다. 조선 중기의 계회도 경향이 정착됨에 따라 1720년(숙종 46)에 완성된 숙종의 『기사계첩(耆社契帖)』에서 보듯이 철저하게 계회의 장면과 인물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러한 보편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김홍도(金弘道)가 1804년(순조 4)개성의 만월대를 배경으로 그린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稧圖)」의 경우처럼 화풍은 조선 후기의 것이나 형식은 조선 초기와 중기에 선호했던 계축의 전통을 따른 예도 남아 있다.
조선시대 계회도에 보이는 시기별 변화상은 당시 궁궐의 각종 행사를 그린 기록화에서도 엿보인다. 계회도나 그 밖의 각종 기록적인 목적을 지닌 그림들이 대부분 화원에 의하여 그려졌음을 감안하면 공통적인 시대적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현존하는 대표적 계회도로는 일괄 1986년 보물로 지정된 「이기룡필 남지기로회도」, 「독서당계회도」,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성세창 제시 하관계회도」, 「호조랑관계회도」, 「연정계회도」, 「기로세련계도」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회화사』(안휘준, 일지사, 1980)
- 『조선후기 아회도』(송희경, 다ᄒᆞᆯ미디어, 2008)
- 「한국의 문인계회와 계회도」(안휘준, 『고문화』 20,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2)
- 『한국회화사』(안휘준, 일지사, 1980)
- 「16세기조선왕조의 최화와 단선점준」(안휘준, 『진단학보』 46·47, 1979)
- 『한국의 미 11 -산수화』(
- 『한국의 미』-산수화-(안휘준 감수, 중앙일보사, 1980)
- 「조선시대 계회도 연구」(윤진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 「한국의 문인계회와 계회도」(안휘준, 『고문화』 20, 1982)
- 「16세기 조선왕조의 회화와 단선점준」(안휘준, 『진단학보』 46·47,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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