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 20일경기도 오산에서 홍진종(1649∼1702)의 묘를 이장(移葬)할 때 출토된 것이다. 홍진종은 1677년(숙종 3) 진사에 급제하여 통헌대부(通訓大夫)와 평강현감(平康縣監)을 지낸 인물이다. 출토 당시에는 16점의 유물이 수습되었으나 훼손이 심한 소창옷 1점을 제외한 15점이 문화재(현, 국가유산)로 지정되었다. 유물은 심의 1점, 중치막(中致莫) 6점, 소창의(小氅衣) 3점, 협수(夾袖) 1점, 답호 1점, 바지 3점 등 모두 15점이다. 1908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현재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심의(深衣)는 길, 상, 소매부분이 백색 저포(苧布)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매끝과 깃에서 도련까지 흑색 무문단(無紋緞)으로 가장자리에 선을 둘렀다. 치수는 뒷길이 138㎝로 상의(上衣) 52㎝와 하상(下裳) 86㎝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화장 113㎝, 뒤품 78㎝이며, 띠의 길이는 239㎝이다.
중치막[中赤莫]은 모두 6점으로 명주에 솜을 얇게 두고 전체를 곱게 누빈 누비중치막이다. 깃의 모양은 칼깃이며, 소매가 넓고 무가 없고 옆선에 옆트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크기는 뒷길이 116.7∼127㎝, 화장 100∼115.5㎝, 뒷품 46∼58㎝이며, 너비 45.5∼52㎝ 정도의 넓은 소매가 달려있다.
소창의 3점은 중치막과 구성 특징은 같으나 크기가 약간 작고 소매통이 매우 좁다. 크기는 길이 104∼116.2㎝, 화장 94.5∼99㎝, 뒷품 40∼56㎝이다. 모두 누비옷으로 되어 있다. 솜을 두껍게 두고 누빈 것으로, 착수에 뒤가 터져 있으며 양옆은 막혀 있는데 이를 협수(夾袖)로 구분하였다.
답호는 앞길이가 115㎝, 뒷길이가 73㎝로서 뒤가 앞보다 42㎝ 정도 짧은 누비답호이다. 앞 목둘레는 깃이 없이 둥글게 파여져 있으며 소매가 없고 양 옆선에는 앞길과 뒷길을 연결하는 고리가 달려 있을 뿐 전체적으로 옆이 트인 형태로 전복의 형태와 비슷하다.
바지 3점은 모두 솜누비 바지로 요즘의 바지와 같은 사폭바지이며, 크기는 길이 95∼98㎝, 허리둘레 122∼140㎝이다. 1점은 무명으로 만들고, 2점은 명주로 만들었는데, 얇게 솜을 두고 1.5㎝ 너비로 누빈 바지와 솜을 두껍게 두고 6㎝ 너비로 누빈 바지가 있다.
유학자들은 사망 후 심의를 수의로 사용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수의로 입은 심의가 다수 출토되는데, 홍진종의 묘에서 출토된 심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심의 유물로 평가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