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 예술·체육
  • 유적
  • 남북국
  • 국가문화유산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깃대기둥. 당간지주.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미디어 정보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깃대기둥. 당간지주.

내용

높이 3.14m. 처음부터 현재의 위치에 70㎝의 간격을 두고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주변은 옛 절터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두 당간지주의 안쪽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다. 바깥면에는 양쪽 옆면의 모서리를 죽이고서 둘레에 너비 14㎝의 세로띠를 돋을새김하였고, 가운데에는 너비 18㎝의 세로띠를 새겼는데, 다시 그것의 중심에 세로로 능선을 가늘게 조각하였다. 또한 바깥면은 정상 부분에서 아래로 0.33m 쯤까지, 아래부분에서 위로 1.04m까지 넓은 띠를 두른 것처럼 약간 튀어나오게 돋을새김하였다. 양쪽 옆면에는 너비 9∼11㎝ 정도의 선(線)무늬를 둘레를 따라 아랫부분까지 새겼는데, 윗부분에는 안상(眼象) 모양의 조각이 있다. 정상 부분은 뾰족한 모습이며,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둥근 선을 그리며 깎여 3단의 굴곡을 두었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杆)은 위아래 2군데에 간구(杆溝)를 마련하여 장치하였다. 곧 안쪽 윗부분에 길이 17㎝, 너비 8㎝, 깊이 8㎝ 크기의 네모난 간구를 뚫어서 간을 설치하였으며, 안쪽 아랫부분에는 현재의 지면에서 높이 55㎝ 쯤에 길이 8㎝, 너비 6㎝, 깊이 11㎝의 네모난 구멍을 뚫어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당간지주의 아랫부분은 현재 묻혀 있는 상태여서, 당간지주의 전체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당간을 받치고 있던 받침돌이 두 지주 사이에 묻혀 있는지, 지상에 드러나 분실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이 당간지주는 위아래의 크기가 거의 같아서 약간 둔중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바깥면의 조각 수법과 그 의장(意匠)으로 보아, 뛰어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각 면의 돌다듬기와 조각 수법으로 미루어,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엄기표, 학연문화사, 2004)

  • - 『국보』7 석조(정영호 편저, 예경산업사, 1984)

  • - 「고령 지산동 당간지주의 발굴조사」(구자봉,『불교고고학』1, 위덕대박물관, 2001)

  • -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정영호,『고미술』1991년 봄호, 한국고미술협회, 199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