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복수

  • 예술·체육
  • 인물
일제강점기 때, 「타향살이」, 「짝사랑」, 「사막의 한」 등을 부른 가수.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2년 2월 10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1년(호적상 1912년 11월 29일)
  • 출생지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서리 22번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타향살이」, 「짝사랑」, 「사막의 한」 등을 부른 가수.

내용

경상남도 울산 출생. 호적상으로는 1912년생이나 실제 생년은 1911년이다. 그의 아내 황금심(黃琴心)도 광복 전후 최고의 인기여가수 중의 하나였다. 1933∼1934년 콜럼비아레코드사 주최 조선일보사 후원의 전국남녀가수신인선발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 가요계에 등장하였다.

1934년 손목인(孫牧人) 작곡의 「타향」(후일 「타향살이」로 개칭)과 「사막의 한」을 불러 인기가수가 되었고, 1939년까지 오케레코드사의 전속가수로 활약하면서「짝사랑」·「휘파람」·「이원애곡(梨園哀曲)」·「풍년송(豊年頌)」등을 불러, 인기의 절정에 달하였다.

1942년 이후 「풍년송」을 부부가 열창하였고,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도 활동하였다. 광복 후 전옥(全玉)이 주관하던 백조악극단(白鳥樂劇團)의 주요단원으로 활약하였다. 1950년 괴뢰군에 붙잡혀 의용군에 강제 입대되었고, 그해 늦가을 국군에게 구출되어 군예대에 편입, 활동하였다.

1957년 8월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가수생활 25년을 결산하는 은퇴공연을 가졌고, 1959년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자리) 5층에 동화예술학원(東和藝術學院)을 개설,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을 경영하면서 이미자(李美子)·안정애(安貞愛) 등의 인기가수를 배출하였다.

1959년 극영화 「타향살이」를 제작하였으나 흥행에 실패하여 서적외판원 등으로 전전하며,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가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 『한국 가요사 1』(박찬호, 미지북스, 2009)

  • - 『가요60년사』(황문평, 전곡사, 1983)

  • - 『한국가요반세기』(세광출판사편집부, 세광출판사, 197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