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함흥 출생. 의사 고원식(高元植)의 외아들이다. 함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지하반공운 동 을 하다가 월남하였다. 6·25 전쟁이 터지자 자원입대를 하는데 전쟁터에서 군의관이던 아버지와 상봉하였다. 부상을 입어 조기 제대한 뒤 1952년 4월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여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평론가로서 촉망받았으나 1958년 심장마비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손경하(孫景河)·하연승(河然承)·김일곤(金日坤) 등과 동인활동을 하였다.
구체적으로, 『신작품(新作品)』·『시조(詩潮)』·『시연구(詩硏究)』 등을 주재하였다. 「매혼(埋魂)」(1953)·「영상(映像)」(1953)·「울음」(1953)·『파경(破鏡)』(1953)·『반(盤)』(1953)·「암역(暗域)에서」(1953)·「침윤(浸潤)」(1953)·「길」(1953)·「11월」(1953)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문학평론에 주력하여 김재섭(金載燮)의 시와 함께 평론집 『초극(超劇)』(1954)을 냈다. 이밖에 평론 「지평선(地平線)의 전달(傳達)」(1954)을 비롯하여 「현대시(現代詩)의 전개(展開)」(1956)·「시인(詩人)의 역설(逆說)」(1957)·「비평가의 교양(敎養)」(1958)「시적(詩的) 상상력(想像力)」(1958, 유고)·「현대시(現代詩)의 형이상성(形而上性)」(1959, 유고) 등을 발표하였다.
특히, 1953년의 평론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精神的素描)」는 윤동주(尹東柱)의 시에 대한 최초의 연구로서, 윤동주 시의 내면의식과 심상, 그리고 심미적 요소들을 일제 암흑기 극복을 위한 실존적 몸부림으로 파악, 윤동주 연구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의 비평은 흔히 유럽의 존재론과 영미의 주지주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으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