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송학동 고분군 ( )

고성 송학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선사문화
유적
국가유산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고성 송학동 고분군(固城 松鶴洞 古墳群)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470번지 일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고성여자중학교 뒤 일명 무학산(舞鶴山) 또는 무기산(舞妓山)이라 불리는 구릉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고성 소가야(小伽耶) 지배자 집단의 중심고분군(中心古墳群)이다. 원래 10여 기의 대형봉토분이 제1고분군과 제2고분군으로 나뉘어져 분포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개간으로 인하여 훼손되어 버리고, 원상태나 위치를 파악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남아 있는 봉토분은 1호분을 중심에 두고 보다 소형의 봉토분들이 서측에 2기, 동측에 3기 모두 6기가 분포하고 있다. 그중 무학산 정상부에 자리잡은 송학동1호분(松鶴洞1號墳)은 일명 무기산 고분(舞妓山古墳)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봉분에 대한 등고선 실측 자료를 토대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고, 2개의 원분(圓墳)이 결합된 것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하나의 묘역으로 설정한다면 길이 66m에 달하는 규모가 큰 고분이다. 이 고분은 1914년 도리이(鳥居龍藏)에 의해 약식 조사된 바 있으나 조사결과는 자세히 보고된 바 없다.

내용

송학동 고분군에 대한 시굴조사와 발굴조사가 1999년과 2000∼2001년에 걸쳐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어 고분의 성격이 밝혀지게 되었다. 먼저 고분군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시굴조사에서 한·일 양국간에 관심의 대상이었던 제1호분이 일본의 전형적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아니라 3기의 원형고분이 중첩해서 연접된 것임이 밝혀졌다. 발굴자는 송학동 제1호분이 소위 전방부가 둥글다는 점과 여기에 대형의 돌방(石室)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방후원분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송학동 고분군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실시된 1호분의 발굴조사에서는 시굴조사시 확인된 3기의 중첩봉토분을 A·B·C호분으로 명명하고 조사하였다. 봉토는 모두 먼저 분구를 조성하고 이를 다시 파서 묘를 축조한 영산강유역과 연결되는 분구묘임이 밝혀졌다. 가장 남측에 먼저 조성된 A호분에서는 주축을 전체 봉토의 장축과 엇갈리게 배치한 길이 10m, 너비 1.4m인 1기의 구덩식돌덧널(A-1호)을 중심으로 9기의 소형 돌덧널들이 돌아가며 배치되어 있었다. 같은 고성지역의 주변에서 조사된 내산리 고분군에서도 2기의 주된 돌덧널을 중심으로 소형의 돌덧널들이 돌아가며 배치되었는데, 이러한 유구의 배치모습이 소가야 또는 고자국(古自國)이라 부르던 이 지역 삼국시대 정치체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지만 목긴항아리, 구멍이 있는 작은 항아리(有孔廣口小壺), 굽다리접시, 뚜껑접시, 마구류 등이 잔존하고 있었다. A호분과 약간 떨어져서 북측에 조성된 B호분은 중앙에 대형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 : B-1호분)을 배치하고 그 옆에 소형의 구덩식돌덧널 1기를 배치한 것이다. 중심 묘인 B-1호묘는 길이, 너비, 높이가 6.7×2.0×1.58m의 돌방 서쪽 단벽 중앙에 3.15×1.0×1.48m의 널길(羨道)을 가진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밝혀져 주목되는 한편, 널길과 돌방 내부의 천장을 비롯한 네 벽에 붉은색으로 도장한 채색고분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나머지 특징은 가야지역의 구덩식돌덧널무덤의 유구 축조수법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며, 여기에 부장된 유물은 굽다리목긴항아리, 큰항아리, 입큰잔, 뚜껑접시 등 토기류가 대부분이고 금속류는 대부분 도굴시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A호분과 B호분을 연결하여 중앙에 조성된 C호분에서는 역시 입구를 서쪽에 둔 활(穹륭狀)천장으로 5.6×2.6×2.4m인 굴식돌방무덤 1기가 축조되어 있었다. 이 돌방은 서남부 가야지역에 처음에 조성되던 세장한 장방형의 돌방으로 알려져 있다.

특징

이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의 특징은 B-1호묘가 서쪽에 널길을 갖춘 굴식돌방무덤이라는 점과 돌방 내부가 모두 채색된 고분이라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가야지역은 물론 삼국시대 고분에서 처음 발견된 자료로서 당시 삼국시대고분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런 채색고분은 일본의 큐수지방과 칸사이지방 고분시대의 고분에서도 흔히 발견되고 있어서 앞으로 한·일간 고분연구에서도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생각된다. 돌방의 구조상으로는 재지 가야지역의 구덩식돌덧널과 서쪽에 인접한 백제지역의 굴식돌방의 특징이 혼재한 것으로 추정되며 부장된 유물의 특징에서는 신라와 일본과도 교류한 흔적이 있다. 이들 특징을 참고한다면 대략 6세기 전반에 축조된 고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A호분에서 출토된 ‘하소오’라고도 부르는 유공광구소호와 뚜껑접시 등은 일본이나 백제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과 많이 닮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고분의 축조시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사이로 보인다.

송학동 1호분은 우선 위치상 소가야지역 대표 대형고분이며 남북으로 쌍분을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에 연결된 봉토를 구성하여 마치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아 전방후원분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상례적으로 중앙에 가장 나중에 축조된 봉토가 가장 높아야하나 B호분과 C호분이 마치 전방후원분처럼 A호분 보다는 낮고 평탄하게 조성된 점에서 C호분의 축조시에는 전체적인 봉토형태의 결정에 일본 전방후원분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간다.

의의와 평가

송학동고분군의 규모나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소가야 또는 고자국으로 불리던 정치체의 왕릉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피장자들이 주변의 제국들과 활발한 교류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고성 송학동고분군(固城 松鶴洞古墳群)」(심봉근, 『고자국[古自國(小伽倻)]의 타임캡슐-송학동고분군(松鶴洞古墳群)』, 2001)
「고성 송학동고분군(固城 松鶴洞古墳群) 시굴조사 현장설명회자료」(동아대학교박물관, 2000)
「고성 송학동(固城 松鶴洞) 제1B-1호분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자료」(동아대학교박물관, 2000)
「고성 송학동고분군(固城 松鶴洞古墳群) 발굴조사(發掘調査)」(심봉근, 『묘제와 출토유물로 본 소가야』,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2000)
『무기산(舞妓山)과 장기산(長鼓山)』(강인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문화재대관(文化財大觀)』-사적편(史蹟篇) 상(上)-(문화재관리국, 1985)
『삼국시대분구묘연구(三國時代墳丘墓硏究)』(강인구, 영남대학교출판부, 1984)
『가야문화권유적정밀조사보고서(伽耶文化圈遺蹟精密調査報告書)』(東亞大學校博物館·固城郡,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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