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6.5m. 현재 아래층 받침돌의 아래부분은 시멘트로 보수하여 구조를 알 수 없고,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도 없어진 상태이다.
받침 부분은 일반적인 모습인 2중의 받침인데, 아래층 받침돌에 모서리 기둥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아래층 덮개돌로는 두껍고 긴 널돌을 놓았는데, 아랫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을 두었지만 매우 형식화되었다. 덮개돌 위에는 네모난 2단의 돌을 얹어 윗층 받침돌의 중석(中石)을 받치고 있는데, 일반적인 모습과는 약간 다르다. 윗층 받침돌의 중석은 매우 낮으며 각 면의 양쪽에 모서리 기둥을 새겼다. 윗층 덮개돌은 평평한 널돌로, 아랫면에는 부연이 있고 수평을 이룬 윗면의 가운데 부분에는 네모난 테두리 장식을 두어 몸돌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만 새겨져 있는데, 1층 몸돌은 제법 높지만 2층부터 높이가 급격히 줄어 안정감을 준다. 특히 2층~5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가운데 부분에 감실(龕室)을 둔 것처럼 네모난 홈을 내었다. 또한 1층 지붕돌부터 각 층의 지붕돌 위에는 하나의 돌을 굄돌로 올려 놓았는데, 이것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백제계 석탑에서 볼 수 있는 결구(結構) 수법과 비슷하다.
지붕돌 윗면에는 내림마루인 우동(隅棟)이 두툼하면서 뚜렷하고, 낙수면은 윗부분은 다소 급한 듯하지만 점차 완만해졌으며, 처마 끝선은 직선으로 이어지다가 전각(轉角)에 이르러서 뚜렷하게 반전되었다. 전각 부분에는 윗면에 2개, 아랫면에 1개씩 작은 둥근 구멍이 있는데, 풍경(風磬)을 걸었던 흔적으로 보인다. 지붕돌 아랫면의 받침은 4층까지는 3단이지만 5층에서만 2단으로 줄었다. 5층 지붕돌 위에는 네모난 찰주공(擦柱孔)이 9㎝ 가량의 깊이로 나 있는데, 찰주공이 관통된 흔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석탑은 대체로 고려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색있는 받침돌의 모습, 감실의 설치, 지붕돌 내림마루의 두드러짐과 경쾌함 등이 특이하고 결구 수법이 가지런한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