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아가리토기는 집자리·조개무지·무덤유적에서 출토된다. 토기의 입술부분을 시문구로 눌러 톱날과 같이 하거나 골을 내어 무늬 효과를 낸 것을 특징으로 한다. 기형은 소형의 바리부터 대형의 항아리까지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제작되었는데, 특히 구멍무늬토기와는 함께 출토되거나 구멍무늬와 함께 시문된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분포는 팽이형 토기가 집중 출토되는 평안남도·황해도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이다.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無文土器)에 보이는 구순각목(口脣刻目)은 구순부에 예새나 판자 등을 이용하여 각목한 것으로, 주로 심발(深鉢)이나 호형기형(壺形器形)에 나타나며 대체로 ‘/ ’ 혹은 ‘1’의 형태와 같이 동일 방향으로 각목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X', ‘V’ 혹은 'N'자 형태의 것도 있다.
구순각목토기의 시간적 분포양상은 청동기시대 전기 이른 시기의 장방형주거지(長方形住居地)에서 공열토기(孔列土器)로 대표되는 역삼동식토기와 이중구연+단사선문을 특징으로 하는 가락동식토기 등과 공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기로 편년되는 송국리형주거지에서도 송국리식토기와 공반되고 있다. 이는 공열토기와 가락동식토기가 송국리유형 토기문화로 대체되어 가면서 소멸해 가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에 구순각목토기는 그와는 별개로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송국리유형에서 확인되는 구순각목토기의 존재양상은 구순각목토기가 특정 토기문화 계통의 산물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구순각목 기법은 비단 무문토기에만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신석기토기와 고구려토기에도 채택되고 있다.
신석기시대에 구연각목기법이 나타나는 토기는 융기문계(隆起文系), 압날문계(押捺文系), 압인문계(押引文系), 세심선문계(細沈線文系), 지두문계(指頭文系), 복합문계(複合文系), 무문양계(無文樣系) 등의 7종으로 구분되며, 남해안 즐문토기(櫛文土器)의 5분기 편년 중 구순각목기법은 조기(早期)에 처음 나타나고 중기이전에 소멸되어 전기를 특징짓는 요소로 보고 있으나, 후기 혹은 만기(晩期)에 가서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기법은 구연각목의 방향에 의해 기면(器面)에 직각인 것, 기면에 사향(斜向)인 것을 비롯해서, X자형각목, 점상(點狀)각목, 파상구연(波狀口緣) 등으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또한 구순각목의 방향은 기면(器面)에 직각인 것에서 사향(斜向)인 것으로, 구순각목의 위치는 구연단(口緣端) 중앙부에서 내측으로 변화하는 시간성이 간취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한편 위와 같은 구순각목기법의 다양성이라든가 범방패총 지두문(凡方貝塚 指頭文)의 접합방법이 외양접합에 치우치지 않는 점에서 볼 때 신석기시대 구순각목기법의 유행은 기면접합의 기능상 목적보다는 장식적인 목적이 강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구려토기 가운데 구순각목토기가 출토된 유적으로는 몽촌토성과 압록강유역의 법동리 하구비 제1호 석실분 그리고 집안지역의 상활용촌(上活龍村) 제2호분, 회령 오동유적(會寧 五洞遺跡) 등이 있다. 고구려토기에 보이는 구순각목 양상은 몽촌토성 출토의 외반구연호 1점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장동호류에 한정되고 있어 특징적이며, 압록강유역의 출토정황은 분묘(墳墓) 출토품이라서 일부 제의적(祭儀的)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