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중·상류유역과 만주의 혼강(渾江)·송화강(松花江) 유역에서 출토되는 민무늬토기의 한 종류이다. 1955년 5월 과학원(지금의 사회과학원) 물질문화사연구소에서 평안북도 강계군 공귀리(지금의 자강도 강계시 공귀리) 집터유적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출토되어 공귀리형토기로 명명되었다.
이 토기는 중앙부의 지름이 가장 큰 타원형의 몸체에 편평한 바닥과 짧게 외반되는 아가리가 붙어 있는 형태로, 몸체에 세로로 길게 물동이형 손잡이가 붙어 있어, 대부분의 민무늬토기 손잡이들이 가로로 붙어 있는 것과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바탕흙은 진흙에 모래와 운모(雲母)를 섞은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 토기는 석면(石綿)과 활석(滑石)을 보강제로 섞어 만든 것도 있다. 토기의 색깔은 회흑색·회색·갈색 등이며, 겉면을 마연한 토기는 거의 출토되지 않고 있다.
이 토기는 공귀리 이외에 시중 심귀리유적, 중강 토성리유적 등 현재의 자강도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어 강한 지역성을 나타내고 있다. 공귀리형토기는 돌살촉·반달돌칼·돌도끼·달도끼·별도끼·그물추·가락바퀴 등의 간석기와 함께 출토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청동기와 함께 출토된 예가 없고, 층위상으로도 미송리형토기(서기전 6∼5세기)가 출토되는 문화층의 아래층에서 출토된다.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인 서기전 8∼7세기경 압록강 중·상류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던 주민이 만들었던 민무늬토기의 한 종류로 생각되며, 토기의 크기가 비교적 큰 것으로 보아 저장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귀리형토기가 강한 지역성을 띄고 있는 만큼 이를 사용한 집단이 고조선의 토착세력집단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좀 더 관심을 갖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