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남산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뚜껑돌움무덤 · 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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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뚜껑돌움무덤 · 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2구에 위치하는데, 송국리 유적과 인접하여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971년에 발굴조사하여 움무덤〔土壙墓〕,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24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독널무덤〔甕棺墓〕 3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1987년에 공주대학교박물관이 백제시대 무덤과 함께 2기의 청동기시대 독널무덤을 추가로 확인하여 독널무덤은 모두 5기이다. 유적 주변 북쪽은 서·남으로 달리는 구릉들이 금강에 연하여 길게 드리워져 있고 동쪽으로는 약 8㎞ 거리에 호암산이 보일 뿐 대부분 지역은 평야지대로 곳곳에 130∼140m 높이의 구릉만이 산재되어 있다.

움무덤은 돌뚜껑〔石蓋〕이 덮여 있는 것으로 상하 이단으로 움〔土壙〕을 만든 것과 단순 움의 형태로 축조된 것으로 구분된다. 이단 움을 갖춘 것은 8기이고 단순 움무덤은 16기인데 단순 움도 지표면 유실을 고려하면 이단의 움을 갖추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독널무덤는 생토면을 깊게 굴착하고, 그 안에 송국리식토기(松菊里式土器)를 세워 구축한 것이다. 독널의 덮개는 부정형의 석재를 사용한 것과 토기편을 사용한 것으로 구분된다. 1987년 공주대학교에서 조사한 독널은 석비레 암반층을 100㎝ 내외의 너비로 넓게 파서 무덤구덩을 조성하였으며, 무덤구덩은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좁아들게 굴광하다가 바닥은 완전히 오므려 좁혔다. 따라서 횡단면은 깊이 50㎝부터는 횡굴(橫窟)의 형태를 하고 있다.

돌널무덤은 B지역으로 구분된 지역에서 조사되었고, 뚜껑돌움무덤과 인접하여 위치한다. 무덤방〔墓室〕은 화강암 풍화층을 2단으로 굴광하여 장방형으로 조성하였다. 하단의 무덤구덩〔墓壙〕은 220×140×35㎝ 내외의 크기이다. 돌널은 얇은 판돌〔板石〕형 석재를 조립하였으며, 바닥에는 홈 형태의 요갱(腰坑)이 있기도 하다.

의의와 평가

이 유적은 돌널무덤과 뚜껑돌움무덤, 그리고 송국리식토기를 사용한 독널무덤으로 구성된 매장유적으로 유적의 시기는 송국리 유적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더불어 이 시기의 사회·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시한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이현숙,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공주 남산리·송학리 유적 출토 유물」(정성희, 『송국리』 Ⅳ, 1991)
「공주 남산리·송학리 백제 고분 발굴조사 보고서」(백제개발연구원·공주대학교박물관, 1990)
『백제고분연구(百濟古墳硏究)』(강인구, 일지사(一志社), 1977)
「백제옹관묘(百濟甕棺墓)의 일형식(一形式)」(강인구, 『백제문화(百濟文化)』6,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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