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산 45와 전 256번지 및 산 4-1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 고분군이다. 이 지역의 고분군은 모두 2차례에 걸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 조사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의해 1971년 2월부터 실시되었다. 이때 남산리 유적과 더불어 청동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는 많은 유구가 발견되었다. 두 번째 조사는 1987년 8월에 이루어졌다. 이때에는 백제시대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8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1971년 독널 1기가 밭을 갈다가 발견되었고, 1972년국립박물관에 의해 정식 발굴되었다. 신고된 독널은 원래 지름 1m, 깊이 1m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독을 바로 세워 넣은 뒤 납작한 판상의 자연돌로 뚜껑을 덮은 형식이다. 독은 좁은 바닥의 난형(卵形) 몸통을 하고 있으며, 바닥 중앙에 지름 3㎝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크기는 높이 78㎝, 아가리 지름 32㎝, 몸통 최대지름 70㎝이다. 1972년 발굴에서도 독무덤 1기와 돌널무덤이 조사되었고, 부근 밭에서도 수많은 민무늬토기조각과 납작한 자연돌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이 지역은 독무덤의 군집지(群集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곳의 독널은 이웃한 탄천면 남산리와 초촌면 송국리 유적에서 발견되는 독널과 같은 형태이다. 또한 송국리형 민무늬토기와 기형·제작수법이 동일해 연대는 송국리 유적과 같은 시기인 서기전 5∼3세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 유적인 송학리의 71-1호분은 화강암의 석비레층을 파고 그 안에 축조한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널방(玄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長方形)이고, 남벽에 널길(羨道)이 달려 있다. 돌방의 장축은 남∼북 방향이다. 돌방의 규모는 길이, 너비, 높이가 2.43×1.44×1.26m이며, 널길은 0.73×0.89×0.88m이다. 돌방은 양벽의 귀를 죽여 단면 6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사각형에 등변 사다리꼴을 얹은 형태이다. 널방 바닥에는 소형의 판석을 깔았으며, 널길의 입구 쪽 중앙에서부터 널길 바닥 밑의 석비레층에 폭 0.18m, 길이 8m 가량의 배수구가 설치되어 있다. 널방에서는 2인분의 인골이 출토되었으나 부장품은 1점도 없었다.
송학리 71-2호분은 평면의 형태가 ‘ㄱ’자형인 돌방무덤으로 도굴되어 부장품은 없었으며, 내부는 흙으로 채워져 있었다. 널방은 평면형태가 장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북동∼남서 방향이다. 규모는 3.84×1.2×1.08m이다. 널길의 규모는 1.1×0.85×0.84m이다. 널방 내부의 바닥에는 큰 깬돌(割石)을 다듬어 깔았고, 널방 입구와 바닥의 안쪽은 보다 작은 깬돌을 깔았다. 그러나 널길 입구에는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다.
송학리 87-1호분은 남사면의 중하단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 전에 널길 부분이 지표상에 드러나 있었다. 지하에 무덤구덩이를 파고 널방과 널길을 갖춘 굴식돌방무덤이다. 전체의 형태는 단면 6각형을 하고 있다. 돌방의 규모는 2.14×1.08×1.3m이며, 널길은 0.5×0.85×0.9m 이상일 것으로 판단된다. 널방 및 바닥에는 특별한 시설이 없으며, 널방의 바닥에서는 심한 굴곡이 확인되는데, 자연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널길의 바닥은 널방의 바닥과 마찬가지로 생토면을 이용하고 있는데 바닥면보다 0.1m 정도가 더 높게 되어 있으며 배수 시설은 발견되지 않았다.
송학리 87-2호분은 1호분에서 동으로 15m의 거리를 두고 있다. 고분은 지하에 무덤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축으로 돌방을 꾸민 앞트기식(橫口式)의 돌방무덤인데 장방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돌방의 규모는 높이 2.6m, 너비 1.3m, 높이는 제일 양호한 곳에서 0.8m가 남아있다. 벽면의 축조는 괴석형의 깬돌을 사용하였는데 비교적 크며, 서로 맞물림 축법에 의존하고 있다. 널방 및 바닥에는 널받침(棺臺)이 설치되어 있는데, 두께가 12∼14㎝ 정도의 석재를 1겹 깔아서 만든 것으로 높이는 0.14m 정도에 북쪽 너비 0.74m, 남쪽 너비 0.4m, 길이 2.2m의 규모이다. 널받침 이외의 바닥은 북쪽부의 널받침 좌우에 3매씩의 돌이 놓여 있을 뿐 그 외의 시설은 발견되지 않았다.
송학리 87-3호분은 발굴 전에 석재들이 노출되어 있었다. 고분은 지하로 무덤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축으로 돌방을 꾸민 무덤이다. 이미 대부분 파괴되고 북벽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벽 쪽이 완전히 유실되어 널길은 확인할 수 없지만 구조로 보아 단면 6각형의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돌방의 규모는 1.96×1.0×1.0m로서 소형이다. 널방의 바닥은 생토면 위에 주먹크기의 깬돌을 깔았는데 이 위에서 관못이 수습되었다.
송학리 87-4호분은 1호분에서 남으로 10m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 전에 이미 유구가 노출되었다. 돌방의 규모는 2.15×0.95×0.8m이며, 남벽부가 입구로 이용되었다. 널방의 바닥 북쪽에는 벽면 및 천장석에 사용한 화강암 석재가 0.4m의 너비로 깔려 있고 그 이외의 나머지 부분은 생토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송학리 87-5호분은 조사 전에 화강암의 석재가 드러나 있어서 고분임을 알게 된 것이다. 역시 지하로 무덤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축으로 무덤방(墓室)을 꾸민 돌방무덤인데 남벽에서 널길의 시설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으로 보인다. 규모는 2.2×0.82×0.84m의 크기이다. 널방의 바닥은 화강암의 석재를 이용하여 깔았다. 또한 널방의 북반부에서 동벽에 연하여 너비 0.4m 정도의 방형 판석이 깔린 곳도 있다. 북벽에서 45㎝의 거리를 두고 동서벽의 중간지점에서 2개의 금동귀걸이가 발견되었다.
송학리 87-6호분은 4호분에서 동으로 4m, 5호분에서 서로 5m, 즉 4호분과 5호분의 중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장축 방향은 남∼북 방향이며, 평면의 형태는 장방형이다. 돌방의 규모는 2.28×0.8×0.8m의 크기이다. 벽면은 화강암의 석재로 꾸몄는데 북벽은 1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면은 귀접되었다. 바닥은 생토면 위에 약 0.15m 의 두께로 잡석 및 모래를 깔고 있는데 생토 위에 약 5㎝ 두께의 모래층, 모래 위에 다시 10㎝ 두께의 잡석을 깔고 있다. 바닥에서는 관못 만이 발견되었다.
송학리 87-7호분은 4호분의 서쪽에서 5m되는 지점에 있다. 지하로 무덤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축으로 돌방을 꾸민 것으로 남벽에 널길 시설의 흔적이 보이지 않고 있어 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판단된다. 규모는 1.5×0.74×0.6m로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고분이다. 바닥에는 비교적 작은 잔자갈을 깔았다. 바닥에서는 관못만이 수습되었다.
송학리 87-9호분은 1호분에서 서쪽으로 8m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무덤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돌방을 축조한 것으로 남벽이 완전히 파괴되어 원형을 구별하기 어렵다. 규모는 2.08×0.83×0.84m의 크기이다. 바닥에는 지름 5∼7㎝의 작은 산돌이 전면에 깔려 있다. 이 위에서 관못이 수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