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李東輝)는 1911년 연길현(延吉縣) 지인향(志仁鄕) 국자가(局子街)에 길동기독학당(吉東基督學堂)을 설립하였다. 교과목은 한문ㆍ수신(修身)ㆍ습자ㆍ체조ㆍ창가(唱歌)ㆍ작문ㆍ국어ㆍ산술(算術)ㆍ지리ㆍ역사ㆍ도화(圖畵)ㆍ중국어ㆍ성경 등이었다. 이동휘ㆍ김하석(金夏錫)ㆍ김립(金立)ㆍ윤해(尹海)ㆍ이동춘(李同春)ㆍ계봉우(桂琫禹)ㆍ장기영(張基永) 등은 길동소학교(吉東小學校)를 설립하기도 하였는데, 교육자 양성을 위하여 6개월 속성사범과(速成師範科)를 병설하였고, 1912년에는 광성중학(光成中學)을 병설하였다.
광성중학은 교장에 이동휘, 교사에 김하석ㆍ김립ㆍ윤해ㆍ오영선(吳永善)ㆍ계봉우ㆍ김상호 등이 있었고, 학생은 130명이었다. 교과목은 중학과(中學科)에서는 법학ㆍ식물ㆍ생리ㆍ한문ㆍ삼각(三角)ㆍ외국지지(外國地誌)ㆍ역사ㆍ산술ㆍ수신ㆍ기하ㆍ지리ㆍ화학ㆍ영어ㆍ대수(代數)ㆍ중국어ㆍ물리ㆍ체조ㆍ창가ㆍ경제ㆍ도화ㆍ지문(地文) 등을 가르쳤고, 소학과(小學科)는 한문ㆍ수신ㆍ습자ㆍ체조ㆍ창가ㆍ작문ㆍ국어ㆍ산술ㆍ지리ㆍ역사ㆍ도화ㆍ중국어ㆍ성경 등이었다.
광성학교는 원래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의 기관학교로서 간도에서 가장 과격한 항일학교(抗日學校)였다. 광성중학은 초기에는 길동중학(吉東中學) 또는 소영자중학(小營子中學)으로 불렀고, 무관학교 출신 체육교사를 맞이하여 군사교육을 실시하는 등 3ㆍ1운동 이전에 두만강 건너 독립군 양성소로 발전하였다.
이후 재만한국인(在滿韓國人) 사회에는 계속하여 민족학교가 설립되었는데, 동간도 지방만 해도 광성, 신흥(新興) 등 130여개의 학교가 설립되어 항일교육의 중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