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1월 1일 서우학회(西友學會)의 이갑(李甲)ㆍ유동열(柳東說)ㆍ박은식(朴殷植) 등 애국인사들이 교육구국의 이념 하에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성에서 서우사범학교(西友師範學校)로 설립하였다. 1907년 이준(李儁) 등 함경도 출신 애국지사들이 설립한 한북의숙(漢北義塾)과 통합하여 서북협성학교(西北協成學校)로 개칭하고 특별과(단기 1년제)와 본과(3년제) 각 1학급으로 편성하였다.
당시의 교과목은 수신(修身: 도덕)ㆍ국어ㆍ수학ㆍ역사ㆍ창가ㆍ도화(圖畵: 미술)ㆍ체조ㆍ법률ㆍ물리ㆍ화학 등이었고, 애국사상을 함양하기 위한 특별교과도 편성하였다. 일제의 감시와 핍박이 가중되자 1910년에 교명만 오성학교(五星學校)로 바꾸고 서북협성학교를 그대로 이어갔으나, 일제 당국에 의해 민족적 불온사상의 온상이라는 죄목으로 1918년 4월 강제로 폐교되었다.
폐교 후 3년 만인 1921년 오성강습소로 다시 개교하였으며, 4년 후인 1922년에 협성학교(協成學校)로 교명을 회복하였다. 1927년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신념으로 민족이 새 삶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고 계몽교화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협성실업학교로 개편하면서 상과와 공과 편제의 실질적인 사립 실업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39년 4월 화신상회 사장 박흥식(朴興植)에 의해 인수되어 이듬해 광신공업학교(光新工業學校)로 개편되었으나, 광복 후 다시 상업학교로 환원되어 1947년 광신상업중학교로 개편되었다.
1951년 9월 「교육법」 개정에 따라 광신중학교와 광신상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으며, 1987년서울특별시 관악구 삼성동 현재의 위치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1998년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99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였다. 2003년 8월 디지털도서관을 개관하였다.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의 교명이 여러 번 바뀌게 된 것은 서우학회에 의해 서우사범학교로 설립된 이래로 30여 년 동안 서북 출신 애국독립지사들과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집단체제로 학교가 운영되면서 학교 분위기가 항일적인 색체를 띠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일제의 탄압은 심해지고 학교는 재정난을 겪게 되면서, 새로운 경영진으로 교체되고 학교의 교명도 변경되었다. 그러나 1939년 박흥식이 학교를 인수한 후 단독 경영체제가 되면서 학교의 운영은 전환기에 들어서게 된다.
1927년 협성실업학교 당시의 교훈은 ‘무실역행’, 1940년 광신상업중학교 시절에는 ‘무실역행ㆍ공명정대ㆍ협동단결’이었으며, 현재는 ‘성실’이다. 실력과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신장, 영어ㆍ과학 교육 활성화, 정보통신 활용능력 향상 등에 역점을 두고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체육활동으로 1929년에 창단된 이래 수많은 대회를 석권한 농구부가 다수의 뛰어난 농구인을 배출하는 등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해마다 10월에는 학교축제인 학원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1995년 『광신학원 90년사』, 2005년 『광신학원 100년사』를 발간하였다.
2009년 현재 3개 학과(국제통상과ㆍ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ㆍ멀티미디어콘텐츠과), 18학급에 총 536명의 남녀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교직원은 49명이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