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2월 1일 미국 남장로교의 목사 배유지(Eugene Bell)가 광주시 양림동에 숭일학교로 설립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목사 변요한(John Fairman Preston)이 취임하였다.
교명인 ‘숭일’은 유일한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뜻과 으뜸이라는 뜻으로 지어졌으며, 그리스도 정신을 바탕으로 지(智)ㆍ덕(德)ㆍ체(體)ㆍ기(技)를 겸비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여 교훈은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삶인 믿음,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삶으로서의 소망, 더불어 함께하는 삶으로서의 사랑’으로 정하였다.
1910년 9월 4년제 소학교와 2년제 고등소학교로 개편하였으며, 1911년 6월에는 고등소학교 제1회 졸업생 14명을 배출하였다. 1912년 학제개편에 따라 초등과 6년, 고등과 4년제로 되었으며, 1913년 5월 고등과 졸업생이 진학하는 전문학교과정의 특별과를 설치하였다.
1919년 3ㆍ1운동 때에는 교사 및 전교생이 선봉이 되어 활동하다가 25명이 투옥되었고, 학생 송광춘(宋光春)은 대구에서 옥사하였다.
1925년에 고등과가 폐지되고 2년제 실업과(목공부)로 개편되었다가 다시 1927년 송정리공업학교로 병합되어 보통과만 존속하였다. 1937년 9월 6일에는 일제가 강요하던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를 당했다.
광복이 되자 동창회의 활동으로 1945년 11월 21일에 복교하여 수업을 하게 되었다. 주간 2학급, 야간 1학급으로 출발하였으며, 초대 교장에는 김용수가 취임하였다. 1947년 6년제 광주숭일중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선교회로부터 운영권을 위임받아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남노회(全南老會) 유지재단에 운영권이 이양되었다.
1951년 9월 고등학교와 3년제 중학교로 학제가 개편되었고, 1952년 3월 신학제에 의한 고등학교 제1회, 중학교 제24회 합동졸업식이 있었다. 1964년 3월에는 학교법인의 재단조직이 숭일학원으로 변경되었으며, 1970년 3월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되어 이듬해 2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997년 3월 남학생 6학급, 여학생 4학급의 남녀 공학으로 변경하였다.
1920년대의 항일운동과 1930년대의 사회계몽활동 등, 폐교의 비운을 맞으면서도 전라남도 지방의 자주독립정신과 중등교육의 맥을 이어왔으며, 또한 1911년에 창설된 숭일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은 그 뒤에 전라남도 지역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의 창설과 그 발전에 밑거름이 된 바 있다.
2010년 2월 현재 제58회 졸업을 하여 총 2만 1,876명이 졸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