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해인사 팔만대장경판고(八萬大藏經板庫)를 재중수(再重修)하던 중 남각(南角, 수다라장) 중앙 중도리 받침 아래쪽에 길이 130㎝, 너비 9㎝, 깊이 7.5㎝ 크기로 파인 공간 속에서 복식 4점과 상량문 및 상궁의 명단이 발견되었다. 복식은 광해군이 입은 것으로 보이는 중치막[中赤莫] 1점, 백색의 홑 장저고리 1점, 광해군비가 입은 것으로 여겨지는 홍색의 장저고리[紅衫] 1점, 상궁이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자주색 단저고리[短赤古里] 1점이 나왔다. 이 유물들은 1965년 10월 12일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현재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다.
중치막 1점은 처음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당시에는 ‘담청색 직령’으로 칭하였다. 안섶 안쪽에는 “을해생조선국왕수만세(乙亥生朝鮮國王壽萬歲)” 안깃 쪽에 부착된 안고름에는 “을해생주상전하수만세(乙亥生主上殿下壽萬歲)”라 묵서(墨書)된 명문이 있어 을해생(1575)인 광해군의 수명장수를 발원하기 위해 넣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겉감은 운보문단(雲寶紋段)이며 안감은 홍색 생초(生綃)로 되어 있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얇게 솜을 넣은 솜중치막이다. 뒷길이 115.5㎝, 화장 94㎝, 품 49.5㎝로 겉깃 모양은 목판 당코깃이며 겨드랑이 아래 삼각무에서 25㎝ 내려온 지점부터 옆선에 트임을 주었다.
백주(白紬) 홑 장저고리 1점은 지정 당시 ‘백삼’으로 칭하였으나 이후 ‘배자저고리’로 바뀌었다. 백색의 명주로 만든 홑옷으로서 길이 72.5㎝ 화장 90㎝, 뒤품 58㎝이다. 깃 모양은 목판당코깃이며 길이가 길어 겨드랑이 아래 옆트임이 있다. 깃 모양과 품으로 보아 여자의 저고리로 추정된다.
홍색 겹 장저고리 1점은 지정 당시 중궁유씨 ‘홍삼(紅衫)’으로 칭하였으나 이후 ‘다홍배자저고리(大紅褙子赤古里)’로 바뀌었다. 안감 안깃 쪽에 “병자생 중궁유씨 명의무병만세 신여금강 천령설소 만복영창 소원여의 심신안녕 성신손계계승승(丙子生 中宮柳氏 命衣無病萬歲 身如金剛 千靈雪消 萬福永昌 所願如意 心神安寧 聖神孫繼繼承承)”이라는 명문이 묵서되어 있다. 병자생 중궁유씨가 무병만세하고 천령이 소멸되어 만복이 영창하고 소원이 여의하며 심신이 안녕하고 귀한 자손이 대대로 계계승승하라는 염원을 발원한 내용이다. 주홍빛을 띠는 홍색 겉감과 옅은 분홍색 안감으로 명주를 사용하였다. 자적색 목판당코깃에 고름은 자적색 명주이며 깃에 백색 동정이 달렸다. 뒷길이 78㎝, 화장 96㎝, 품 59㎝로 길이와 품에 비해 화장은 손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길다. 무가 없이 겨드랑이 아래로 38㎝ 옆트임이 있다. 1987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광해군비당의’와 색상과 옷감만 다르고 형태는 같다.
자적색 단저고리는 옷 전체에 솜을 얇게 둔 솜저고리이다. 저고리 안감 안깃 부분에 “권시을유ᄉᆡᆼ”이라 묵서되어 있으며 함께 발견된 상궁 명단에 “상궁권씨(尙宮權氏)”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권씨 성(姓)을 가진 상궁이 입었던 저고리로 보고되었다. 겉감은 자적색 토주(吐紬)이며 안감은 옅은 홍색을 띠고 있다. 앞의 세 점과 달리 깃이 목판깃이며 길이 59㎝, 화장 74㎝, 품 57.5㎝로 장저고리에 비해 길이와 소매가 짧다.
이 복식들의 바느질 수법은 재봉침이 무색하리만큼 정교하고 세련되어 있다. 목판깃에서 목판당코깃으로 변화되는 부분적인 형태는 임진왜란 직후의 변화로서 당시 복식 고증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불복장 유물로서 색상을 유지하고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