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당 이씨는 본명이 이완흥(李完興)이며, 왕자 이육(李堉)을 낳고 귀인(貴人)으로 봉해졌으나 왕자가 2세에 급사(急死)하여 불운한 시절을 보낸 인물로, 이 원삼을 생전에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79년 1월 23일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현재 세종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유물은 겹원삼으로 겉감은 자적색으로 호리병·‘卍’자가 들어 있는 표주박문·희문(囍紋)·수문(壽紋) 등이 제직된 문사(紋紗)이다. 소매 끝에 댄 색동은 보상화무늬가 직금(織金)된 남색·황색의 문단이며, 홑으로 된 백한삼은 박쥐문이 들어있는 운문사(雲紋紗)이다. 안감은 홍색의 운보문사로 되어 있다. 진동 아래로 4㎝ 내려온 지점부터 양옆이 트여있으며 안감의 진동 부분부터 남색의 선이 부착되어있다. 겉감과 안감을 따로 만들어 겹쳐져 바느질되어 있고 깃 아래 5㎝부터 깃까지는 분리 되어 있다.
겉깃은 배자깃, 안깃은 목판깃이며 넓은 백색 동정이 달려있다. 앞여밈은 좌우 중심이 맞닿는 대금형(對衿形)으로 섶이 없다. 단추는 소실되어 없으며, 금색의 국화무늬 장식 사각 단추와 사각 흉배는 후에 따로 부착한 것이다. 뒷길이 164㎝, 앞길이 133㎝로 앞보다 뒤가 긴 형태이며, 화장 132㎝, 품 46㎝에 소매의 폭은 73.5㎝로 매우 넓다. 배래나 도련이 거의 완만한 직선형이다.
자적원삼은 조선시대에는 초록원삼보다 중요한 의례에 착용된 반면, 대한제국 시기 이후의 자적원삼은 군부인이나 후궁 신분에서 착용되어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