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칠원현(漆原縣)의 속현으로 그 남쪽에 있었다. 원래 성법부곡(省法部曲)이었는데, 고려 때 현으로 승격하여 구산현이라 칭하였다. 처음에는 웅신현(熊神縣)에 속하였다가 뒤에 금주(金州)에 예속되었다.
공양왕 때 칠원에 속하게 되고, 별호를 은산(銀山)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영역의 일부는 창원부 서촌(西村)까지 월입(越入)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후 전화로 읍리(邑里)가 황폐하여 장차 현으로서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한때 창원부에 예속되기도 하였다. 1737년(영조 13) 복구되었다.
청량산(淸凉山)·적현(赤峴)·대천(大川) 등으로 산수가 아름답고, 마산포(麻山浦)·구산포(龜山浦)·여음포(餘音浦)·저도(猪島) 등의 포구가 번창하였다.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은 옛 읍명을 취하여 이름붙인 것이다.